(4) 첫 번째 관문에 입장하셨습니다.

캘리그라피가 이런 거였어?

by 달림


캘리그라피 원데이클래스를 마치고 다음 주 주말 정규수업을 등록했다.


이전에 수업 신청을 고민했던 2주간의 시간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미 잊은 지 오래였고 캘리그라피를 배울 생각에 오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미 일주일 전에 첫 만남을 가졌던 붓펜은 내 마음이 투영되었는지 어서 자기를 잡아달라는 듯 들떠있는 것 같았다. 이 때는 캘리그라퍼가 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새로운 취미를 발견했다는 설렘이고 재미였을 뿐이었다.


쿠레타케 22호 붓펜


나는 미술의 ㅁ자도 디자인의 ㄷ자도 알지 못하는 예술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처음엔 머릿속이 온통 의심으로 가득 차 올랐다.


'재미있긴 한데 내가 과연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악필인데 글씨를 예쁘게 쓸 수 있을까?'

'실력이 늘긴 느는 걸까?'



수업의 진행방식은 일단 예시가 인쇄되어 있는 종이 위의 글씨를 따라서 써본 후 선생님께서 다양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예제를 써보이시면 나는 그걸 보고 똑같이 따라쓰면 되었다. 보고 똑같이 쓰기만 하면 되는 건데 보면서도 그게 잘 안되니 나의 미적 감각에 헛웃음이 날 때도 있었다.


이게 맞는 건가 싶으면서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쓰는 행위에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할 때 '흥미'는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꾸준하게 할 수 있는 힘은 점차 실력을 향상시켜 준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오! 이게 되네?'

첫째달 >>>>>>>>>> 4개월 차


뭐든 장비빨이라고 했던가. 처음엔 붓펜으로 글씨만 예쁘게 써도 소원이 없었는데 색색의 그림이 입혀진 작품들을 보니 색깔이 글씨를 더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고 욕심이 났다. 아직은 글씨가 영 볼품없는 초보지만 나도 장비를 갖추고 싶어졌다.


물감과 붓이라는 장비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터,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시는 선생님 덕분에 손쉽게 꾸밀 수 있는 스탬프펜과 도트펜을 구입할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 나의 미적 감각이 깨어날 수 있길 기대했다.


도트펜과 스탬프펜


어느 정도 향상된 실력은 그새 정체되었는지 좀체 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쯤 선생님의 반이라도 되는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 하는 얼토당토않는 조급증만 더해 갔다.


이제 갓 캘리그라피에 입문한 내가 10여 년 경력의 선생님을 빨리 따라가고 싶어 하다니, 빨리 잘 쓰고 싶은 욕심이었다. 움켜쥐려 하면 더 달아나는 법, 조급증으로 가득 찬 마음을 비우고 묵묵히 따라 쓰기를 계속했다.


"천천히 쓰기, 예시보다 더 길고 굵게 쓰기, 손목만이 아니라 팔꿈치까지 사용하기."


나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급한 성격은 아닌데 뭐가 급한지 자꾸 빨리 써진다. 힘이 없는 것도 아닌데 눌러 쓰기가 잘 안 된다. 책상 공간은 충분한데 자꾸 팔꿈치가 책상 밖으로 나가 손목만 사용하고 있다. 한 글자를 쓰는 데에도 정성을 들이고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단다. 그게 캘리그라피다.


보기 좋은 떡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글씨를 배우는 중간중간 꾸미기 요소도 알려주셨는데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이 꽃모양이었다. 5개의 꽃잎인데 어쩜 그렇게 안 예쁘게 만들어지는지 또 나의 무 감각을 원망하며 찍고 찍고 또 찍어보았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 그저 묵묵히 정해진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뿐이다.


원망하는 마음을 또 비우고 수 차례 도전해 본 결과, '오! 이것도 되네. 신기하다!'. 안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하다 보면 된다. 그동안 못했던 건, 당연히 안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정신세계의 문제였던 거다.


듀얼 메탈릭 브러쉬
아카시야 컬러 붓펜


차분히 앉아 좋은 글귀를 읽는다.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쓴다. 위아래 좌우 여백을 확인하며 어떻게 변화를 주면 좋을까, 어떤 스토리를 담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글과 어울리는 그림을 떠올려본다.


알고 보니 캘리그라피는 그저 보기 좋은 손글씨가 아니라 '나만 색깔과 스토리를 담아 생각'하면서 써야 하는 감동적인 예술이었다. 2주간의 고민 끝에 용기 내어서 시작해 보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쳤으리라.


어느덧 캘리그라피 예찬론자가 된 듯한 나, 이제 장비빨도 앞세웠으니 어디 한번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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