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현실이 됩니다.
캘리그라피를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진 지 만 2년에 가까워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이 일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뭐지? 난 어떤 사람이지?'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딱히 속 시원한 해답을 못 찾고 있던 중이었다.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삼십 대의 하루하루를 치열하고 전투적으로 살아왔다. 마흔을 넘기니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아이들은 성장하여 나의 육체적인 고됨은 덜해지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하며 중간관리자가 되었다. 그 후 1년이 조금 못 되었을 때였던가 직장에서의 어떤 사소한 계기가 날갯짓이 되어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회의감을 쓰나미처럼 몰고 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나에게 팀장이라는 직함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늘 불편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회의에 참석하거나 외부에 업무 보고를 할 때면 더더욱 숨 막히는 불편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요동을 쳤다. 아마도 성향 탓이 큰 것 같은데 앞으로 그 빈도가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거나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자꾸 하다보면 괜찮아질거야.'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그런 증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변함없이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실무자일 때 난 이 조직에 뼈를 묻으리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점점 이 불편하고 맞지 않는 옷에서 하루빨리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작은 불씨로 시작된 혼돈의 감정은 팀장이 되고 3년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꺼질 줄 모르고 뭉근하게 타오르며 십여 년간 잊고 지냈던 '자아'를 흔들어 깨웠다. 남은 인생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그 고민은 성장에 목마른 사람처럼 자기 계발에 집중하게 했다. 독서와 운동을 하며 시나브로 생각에 변화가 스며들었고 보다 만족스러운 삶의 방향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일까?'
아지랑이가 춤추듯 피어오르기 시작했던 해방의 꿈은 자본주의와 경제에 눈과 귀를 닫고 살던 내게 돈이 될 만한 것에 대해 관심을 쏟고 탐독하며 경제적 자유를 좇게 만들었다. 유튜브와 책으로 알게 된 투자와 사업은 어느 하나 쉬워 보이진 않았지만 이제라도 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깨우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시작된 돈 공부는 가지를 뻗어가며 마음공부로 이어졌고 마음공부를 통해 다시 빚어진 나의 마음 그릇은 아지랑이 같던 그 꿈에 점점 더 형태를 갖추게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십 대 중반의 나이, 학령기 아이 셋, 자산이라곤 살고 있는 집 한 채, 노후준비라곤 65세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연금 외에 그 어떤 경제적 혜택 일절 없음이 나의 현 상황이었다.
현실과 괴리감 있는 꿈으로 가득 찬 마음과 달리, 머릿속은 정년까지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이 조직의 강점을 뒤엎고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까지 모두 감내할 수 있을만한 뾰족한 단서를 찾지 못해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내가 진짜로 퇴직을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의심이 많았고 그 의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마음이 진심이든 아니든 일단 뭐라도 계획해야 했다. 그래야 가슴속에 희망이라도 품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상황을 신중히 고려해 퇴직 시기를 계획했다. 일단 세 아이가 최소 고등학교는 졸업을 해야 했고 나도 세상밖으로 나갈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기엔 그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았다. 그러니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철저하게 퇴직을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된 퇴직은 실패와 후회의 확률이 낮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무모한 도전이 아닌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