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색.
순백색의 무지. 깨어진 얼굴의 발가벗은 인간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해한 인간의 말간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게로 돌아오는 나의 얼굴. 내게 돌아오는 나의 말. 몸 짓.
내가 드러나 보이게 하는 순백색.
‘선’을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자신을 위함이었던 부풀려진 말이 깨어진 얼굴에 닿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말이 부서지고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초라하게 드러나 보이게 돼. 의미가 과연 있었던 걸까. 선을 가장한 까만색 덩어리가 드러나면 그걸 보게 되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거야.
인간은 자신이 부끄러워지면 그걸 보면 견딜 수가 없는 거거든. ‘난 이런 사람 아니에요’
변명으로 나를 보호하려 들지만 그 앞에선 변명이 또 내게로 돌아와 이미 내가 변명하고 있다는 걸 아로새기는 거야.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놓은 하나를 덮지 못하고 도돌이표처럼 내가 건넨 것들의 까만 덩어리들을 친절히 되돌리는 내게 상처 주는 인간이 바로 순백색. 순백색 무지의 인간이거든.
순백색의 무지가 눈앞에 있다면 나는 어떨까.
기꺼워하며 그 앞으로 다가가 마주하려 해. 나는 그에 물들어 나를 어떻게든 되돌려 놓고 싶으니까. 순백색. 순백색의 무지가 이제 어울리지 않게 어지러운 인간이 되었지만. 그건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래. 용기가. 아주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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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얼굴 가까이. 손을 올려 그 얼굴을 어루만지려 해. 무지한 인간.. 마주할 두려움 앞에서의 고백.
아팠니. 발가벗은 인간인 너는 아무도 해치지 않아. 나는 알아. 그것만큼은 진실이라는 걸 알아.
나를 덮어줄 백색의 눈물을 찾고 있어. 나는 부끄러운 인간이 되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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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를 고백해야만 하겠지. 순백색의 무지. 그 앞에선 우리 모두는 드러나게 돼.
시험을 치르는 거야. 나라는 존재가. 나라는 한 사람이 어떠한 인간인지.
고개를 들 수 없을지도 몰라.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 나의 진짜의 모습을 보면 도망가고 싶어 질 거야.
그러니 너는 너를 시험해야만 할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하겠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너를 고백할 수 있니.
드러나게 될 테니 스스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우리는 고백해야만 해. 이미 드러난 것을…
이미 드러난 나의… 나의 진실을.
23.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