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카드를 썼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즐거울 수 있나요. 웃는 표정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당신의 마음과 걸음이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착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온한 얼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짜증스럽고 신경질 적인 얼굴 근심에 쌓인 얼굴 아닌 평온한 얼굴 말입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오늘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침과 다르게 점심엔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흐릿한 하늘은 거두어졌습니다. 오늘 12시엔 정신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다녀왔다고 말했을 때 용기를 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해주어 되려 고마웠습니다. 그 마음이면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서 길을 잃는다고 말입니다. 삶이 나를 시험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그려지던 시간이었습니다. 형체가 불분명한 나에서, 나에게서 하나의 선이 형체를 갖추기 위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던 시간이었습니다.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처음으로 내가 그려지던 순간에 나는 멈추었습니다. 시험당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선택은 용기를 필요로 하니 나는 용기 없음을 시인해야 했습니다.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태양 아래 놓인 거대한 장벽을 나는 그때에도 보았을 겁니다. 선생님은 묻습니다. 어떠셨나요. 그래서 어땠나요. 그랬을까요. 그랬나요. 모든 질문은 조심스럽게 나를 향합니다. 감정은 기억과 함께 떠오릅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의 살아온 날들이 나를 감싸 안아 주지 않습니다. 견뎌야만 했던 지난 삶은 따뜻한 이불에 싸여있지 않습니다. 거친 면면이 드러납니다. 날카로운 말과 시선이 교차합니다. 나의 땅은 아픈 것들을 품고 있으며 붉습니다.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습니다. 당신은 붉은 땅을 밟을 수 있나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나는 나의 용기 없음을 시인했습니다. 당신도 그럴 수 있나요.
감정이 기억과 함께 떠오르며 파도와 함께 해안가로 밀려오는 쓰레기들처럼. 충분히 치웠다고 생각했던 삶의 잔해들이 계속해서 밀려옵니다. 그것들을 치워내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 삶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현실직시. 떠밀려오는 것들 앞에서 나의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찌꺼기. 부스러기. 덩어리들은 나로부터 시작된 것들입니다. 버렸거나 잊었거나 보고 싶지 않았거나 그러니까 회피의 산물입니다. 그것들은 나의 것입니다. 이젠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이 당신을 향하기 전 나는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온갖 추함과 아름다움이 상쇄하여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사람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타인에게 닿은 ‘나’는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왜곡을 겪습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너는 그러 그러한 사람이야라고 말하지만 실은 각자에게 닿은 나는 모두 다르게 해석됩니다. 모두 앞에 서서 같은 말을 해도 우리는 서로를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각자의 귀로 듣고, 각자가 주의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향합니다. 나는 단 하나의 인간이지만 무수한 타인만큼의 ‘나’로 존재하게 됩니다. 내게 닿은 당신은 옳습니다. 당신을 나는 믿고 있습니다. 허나 타인에게 닿은 당신은 과연 옳기만 한 사람일까요? 그 모습은 신뢰할 만한가요? 나는 하나의 얼굴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내게 닿은 당신의 얼굴 역시 하나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하나의 사람을 새롭게 창조해 냅니다. 내게 닿은 사람을 내가 원하는 형상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
나름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비교하며 판단한다고 믿지만 당신이 보고 있는 나는 당신의 생각하는 나와 다를 겁니다. 나는 내가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얼굴로 여러 사람에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나 또한 당신을 멋대로 그려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그려내었나요.
어쩌면
이상에 가까운 인간이 태어났습니다.
25.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