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세계 / 닫힌 문

by elliott


한번 확장된 인식은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열린 세계를 마주한 인간에겐 어떠한 고통이 따르는데 그것은 아마도 '침묵'에 의한 '고독'이지 않을까.

말 없음은 때로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유가 된다.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가. 마주한 열린 세계 앞에서 문을 닫을 수 없다는 사실에 어떤 절망감 같은 것을 느껴본 적 있는지...

눈앞에 커다랗게 놓인 세상. 확장된 세계. 어떠한 말을 해도 나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 앞에서의 무력감.

말을 해야만 한다면 ㅡ 어떤 대상에게 어떻게 닿는 형태의 '말'일 것인지. 어떤 대상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아야 한다. 한마디 말의 파동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를 가늠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물음에도 신중해지고, 그에 따라 입을 떼어 목소리를 내는 순간까지의 속도가 느려진다. 하나의 단어가 오만가지 의미로의 해석됨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점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타인들과의 대화보다는 홀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답답한 인간. 말을 잃어가는 인간이 되어가는 일은 꽤나 두려운 일이고, 꽤나 외로운 일이라서 차라리 다시 좁은 문을 통과해 모든 것을 알지 못했던 때.로 돌아가려 애를 쓰게 된다. 열린 세계의 아름다움의 경이를 느끼는 인간,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홀로 음미할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슬픈 인간. 한번 열린 세계의 문은 닫히는 법이 없고... 그러니 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홀로 드넓은 세계로의 사유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은 기나긴 방황의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열린 세계 안에서 너무나도 드넓은 공간에 놓인 '진실들' 앞에서 정신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선 방에서 소통할 수 있는 주변부의 무수한 타인이라는 대상들을 잃어버린 채(망각한 채) 홀로.

고독하게.

열린 세계의 불안정함 속에서 누구도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지만, 지극히도 현실적인 여기. 이곳에선 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하나의 인간(이상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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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발저의 책을 읽고, 그가 궁금해져 그의 이미지를 검색했다. dead in the snow. 요양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쓰러져 생을 마감한 작가의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작은 인간의 고요한 죽음. 그 사진을 나는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왜인가. 눈 내리는 날의 산책이 마치 내가 죽음을 그토록 바랐던 어느 봄날의 벚꽃 잎 휘날리던 어느 따뜻한 날의 기억을 불러왔기 때문일지 모른다. 쓸쓸하지만 자연에서의 행복한 죽음. 나는 왜 그것을 행복한 것으로 보았는가 ㅡ

정신질환을 겪은 무수한 작가들의 삶을 왜 나는 아름답다 생각하는가 ㅡ

그들의 삶을 알지 못하는데도 그들의 세계를 보았기 때문에? 그 텍스트들이 나를 어떠한 지점, 그들의 열린 세계로 인도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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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다 문득 열린 세계라는 말이 떠올랐고. 문을 닫을 수 없는 생각에 머물렀다. 오늘 한낮의 산책에서 얻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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