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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를 흉내 내지 말 것

「에세」 82

by 루너

이번에 읽은 글의 제목을 보니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경기도의 큰 초등학교에서 천안의 작은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 학교는 특수학급이 따로 있기는 했지만 장애인들은 보통 우리와 같은 학급에 소속되어 함께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 장애인들이 수업 도중에 소음을 일으켜 수업을 방해하거나 오줌을 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처음 그것을 목격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다만 기존에 다니던 아이들은 여기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사소한 웃긴 사건으로 치부하는 듯했다. 심지어는 이 아이들을 따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업 시간에 장애인이 갑자기 "컹컹" 소리를 내면 아이들 몇몇이 이를 듣고 "컹컹" 소리를 낸다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오줌을 싸는 일을 따라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모두가 그런 아이들을 함부로 흉내 내서는 안 되는 것을 안다. 아마 그때도 알긴 알았을 것이다. 자제력이 없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눈에는 장애인이나 장애인을 흉내 내며 희열을 느끼는 아이들이나 모두 불쌍하게 보였을 것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혼나면서도 하는 것이 자제력을 잃는 정신병처럼 보이지나 않았을까?


세네카는 어떤 장님의 이야기, 그리고 장님을 보며 자신이 한 생각을 들려준다. "여자 광대가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네. 그 여자 광대는 자기가 장님인 것을 전혀 모르고 우리 집이 어둡다며 자꾸 돌보는 사람에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달라고 조른다네. 우리가 그 여자를 보고 비웃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부디 믿어 주기 바라네. 아무도 자기가 인색하다는 것, 욕심쟁이라는 것을 모르네. 게다가 장님은 안내자라도 붙여 달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안내자로 삼지. 우리는 이렇게 말하네. 나는 야심가가 아니다, 하지만 로마에서는 야심가가 아니고선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낭비가가 아니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는 큰돈이 든다. 내가 화를 잘 내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여태껏 견실한 생활 방식을 세우지 못한 것은 젊음 탓이다... 우리 밖에서 우리네 병을 찾지 마세나. 병은 우리 안에, 우리 내장에 들어 있네. 게다가 우리가 병든 줄도 모른다는 것이 치료를 더 어렵게 하네." 결국 우리부터나 똑바로 살 일이다.


마지막으로 재밌는 이야기들을 적어두려 한다. 코엘리우스는 로마의 고위 인사들을 시중들고 수행하는 일이 싫어서 통풍에 걸린 척을 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다리에 기름을 바른 뒤 싸매고, 통풍에 걸린 사람들의 거동을 따라 했다. 그랬더니 "운수가 그에게 완전한 통풍 환자가 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어떤 자는 추방령을 피하기 위해 추적자들이 알아보지 못하게끔 변장을 하고 애꾸눈 행세를 했는데, 자유를 되찾을 무렵에는 너무 애꾸눈 흉내를 오래 낸 나머지 정말로 한 눈의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물론 운수가 우리의 행동을 심판해서 그런 운명을 선사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정말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인과응보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병자의 행동을 흉내 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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