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86
어제 '용기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하는 「라케스」를 읽었는데, 오늘 이 글을 읽게 되었으니, 운이 좋았다. 용기에 대해 좀 더 생각할 기회를 얻었으니.
이 글에서는 "용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논하지 않지만 재밌는 사례들을 많이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은 평상시에 용기와 동떨어진 생활을 한다. 종종 영웅들이 위기의 상황을 멋지고 침착하게 대응해 내는 이야기가 전해지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랬을 뿐 평소에는 영웅들도 풀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절대 풀어지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말하자면 사상과 삶이 완전히 합치된 격이랄까. 몽테뉴도 "보통 사람들의 관행과 그렇게나 동떨어진 기획에서, 사상이 일상적인 생활 양식이 될 정도로 끈기 있고 꾸준하게 영혼과 이념을 결합한다는 것, 그것이 가능하리라고는 거의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여기에 성공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희한한 사례들이 많지만 그중 하나만 인용하자면, 회의주의자 퓌론은 자신에게 닥친 일이 어떤 귀결을 불러올지 알 수 없다는 신조를 지키기 위해 기행을 많이 벌였다고 한다. 길을 가면 무슨 장애가 나타나도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고, 말을 시작하면 상대가 가 버리고 난 뒤에도 끝까지 말했다고 한다. "무엇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것은 지각 자체의 선택 능력이나 확실성을 배제하는 자신의 명제에 위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희대의 컨셉충이다. 그런 퓌론도 한 번은 개를 피하다가 들킨 적이 있다. 그때 퓌론도 순순히 "인간을 완전히 벗어 버리기란 참으로 힘들다."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물론 인간을 극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지만.
종교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종교를 강하게 믿는 전사들은 자신들의 수명은 신이 정해주셨으니 무슨 일이 닥쳐도 죽을 때면 죽고 살 때면 산다고 믿었다. 베두인족 전사들은 운명이 알아서 자신의 목숨을 결정해 주려니 믿고 갑옷도 입지 않았다. 사실 이런 믿음은 지금 보면 어리석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이게 현명한 태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용기는 지혜뿐만 아니라 믿음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취하는 태도가 가장 옳다는 믿음에서 용기가 우러나오는 것 같다. 물론 태도의 옳고 그름을 저울질하기 위해 지혜가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사람의 시각은 어쨌든 좁으니 개인이 아는 한에서 최선의 것을 실천하는 것이 용기의 작은 형태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