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88
내가 직접 본 훌륭한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평정심을 잃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소인배들은 분노를 권리로 생각하고 거리낌 없이 표출한다. 심지어 상대가 누군가도 가리지 않고, 화가 난 이상 발언권이 있다고 믿고 달려드는 것이다. 반면 존경스러운 사람들은 화를 좀처럼 내지 않고, 분노하더라도 분노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기가 분노 때문에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없다면서 결정을 미룬다. 소인배라면 바로 보복하고도 남았을 시간에!
몽테뉴는 단언한다. "분노만큼 올바른 판단력을 흩뜨리는 정념은 없다." "분노를 통해서 보면 결점이 더 크게 보인다. 안개 사이로 보면 사물이 더 커 보이는 것과 같다." 상대가 가혹하게 나온다면 십중팔구 분노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함부로 간언을 하면 분노 때문에 오히려 거꾸로 행동할 가능성이 있어서 말리기도 어렵다. 결국 몇 번의 반복된 분노가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영구히 벌리는 것이다. 분노는 자신에게도 해롭고 조직에도 해롭다.
나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나는 졸렬한 행동도 많이 했다.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분노했는데 당사자에게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나보다 아랫사람한테 짜증을 낸 적이 몇 번 기억난다. 이런 일을 저지를 때마다 후회했지만, 후회로도 분노를 제동할 수 없었다. 나는 감정을 멸시하고 이성에만 기대라는 옛 철학자들의 말을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공감하고는 하는데, 이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몽테뉴는 이렇게 조언한다. "맥박이 빨라지고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는 동안에는 잠시 멈추자. 진정되어 냉정을 되찾으면 사실 일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화가 났을 때 명령하고 말하는 것은 정념이지 우리가 아니다." "나라면 괴로우면서도 억지로 내 기분을 누르고 있기보단 차라리 밖으로 표출하고 싶다. 정념은 밖으로 표출됨으로써 약화된다. 감정의 화살촉이 안을 향해 꺾이게 하기보다 밖으로 작용하게 하는 편이 낫다." 결국 분노를 풀 구석, 그리고 분노를 풀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조언이지만, 재료들을 구하기 어렵다.
어쩌면 글쓰기가 탈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익명을 쓰는 일이 비겁하다면 비겁하겠지만, 자신이 분노한 계기를 쓰다 보면 무언가 보이는 것이 있을 테다. 그러고도 분노가 풀리지 않고 도리어 내 분노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면, 성찰이 아니라 고발로 장르를 틀어버리는 방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