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98
나는 안 좋은 습관을 갖고 있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한도 끝도 없이 그 일만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 봤자, 그리고 많은 위로를 받아 봤자,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자꾸 내가 바꿀 수 없는 본질을 생각하며 아쉬워한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몽테뉴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어차피 사건의 뿌리를 어찌할 수는 없는 법이니, 차라리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고통스런 생각이 나를 사로잡으면 그것을 극복하기보다는 바꾸는 것이 더 손쉽게 보인다. 정반대되는 생각으로 대체할 수가 없으면 적어도 다른 생각으로 대신한다. 변화는 항상 누그러뜨리고 녹여 주며 가시게 한다." 키케로도 같은 말을 했다. "정신은 이따금 다른 취미, 다른 관심, 다른 임무, 다른 일 쪽으로 방향을 바꿔 줘야 한다. 결국 정신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흔히, 회복이 더딘 환자들의 경우처럼, 장소를 바꿔 줘야 하는 것이다."
군 시절 우울증을 앓게 되어 지금도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이 '취미'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배출구가 없으면 다른 곳에서 승화시키라는 지론이다. 이 말이 몽테뉴의 말과 겹쳐 보인다. 「에세」를 빨리 읽었더라면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런저런 다른 일들을 하다 보면 우리는 우울한 감정마저 잊게 된다. 나도 군대에서 우울증을 떨쳐내다시피 한 시기가 생겼는데, 역설적으로 그때가 몸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 일이 많아서 바쁘면 한 일에만 매달려 있지 않으므로 감정이 지치지도 않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일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감정이 치유된다. 결국 시간이 약이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관심을 돌려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다. "자연은 이처럼 덧없음이라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서 일해 나간다. 우리의 고통에 대한 최상의 의사로서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은 시간이며, 시간은 우리 상상력에 다른 일거리들을 연이어 제공함으로써 아무리 강력한 것이었을지언정 처음의 느낌을 해소하고 부숴 버리며, 주로 이 방식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