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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에 관하여

「에세」 100

by 루너

수레는 역사적으로 재밌는 논제이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청나라의 성공 비결로 벽돌과 도로를 든다. 벽돌을 쓰면 쉽게 튼튼한 시설물을 지을 수 있고, 도로를 잘 닦으면 수레가 편히 돌아다니며 물자의 유통을 촉진한다는 지론이었다.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로마의 성공 비결로 잘 포장된 도로를 꼽는 책을 읽은 적도 있다. 교통은 예로부터 늘 중요한 개념이었다. 이 글은 교통이라는 말을 수레라는 사물로 대유(代喩)했을 뿐이다.


몽테뉴 또한 수레에 대해 많은 말을 남겼다. 우선 몽테뉴답게 개인적인 성찰로 시작한다. 수레를 비롯한 교통수단을 탈 때 멀미를 겪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이 멀미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몽테뉴는 스스로의 경험을 돌아보며 그 설을 부정한다. 다만 두려움이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사리분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두려움을 뱃멀미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도 두려움 때문에 사리분별을 잘못하게 된 까닭일지도 모른다.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무작정 거기서 벗어나려고 갈급해하는 것보다 더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없다. 티투스 리비우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겁을 적게 먹을수록 위험은 줄어든다." 인간의 몸은 미약한 존재다. 그 대신 정신을 사용해서 두려움이 무뎌지게 스스로를 무장할 수도 있다. 이는 다른 동물의 무장과는 구분되는 방식이다.


수레 하면 전쟁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대전의 핵심인 전차들도 따지고 보면 화기를 덕지덕지 달고 다니는 수레다. 몽테뉴에 의하면 헝가리인들은 옛날부터 터키인들에 맞서기 위해 수레에 방패병과 화승총병을 싣고 벽을 둘러놓았다고 한다. 이것보다 더 앞서는 예시가 없다면 이것이 최초의 전차일 것이다. 기동력은 전투의 핵심이다. 전차는 당연히 태어날 운명이었고, 전차의 본질로 수레가 있었다.


또다시 교훈적인 얘기로 넘어가자. 수레는 사람을 싣는다. 그런데 탄 사람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수레를 과도하게 치장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시대로 치면 외제차에 튜닝을 하는 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몽테뉴는 이를 좋게 보지 않는다. "왕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타인에게 빚지고 있다." 국민은 국익을 기대하며 왕에게 투자하지, 왕의 수레를 꾸미기 위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후덕함은 왕의 다른 덕성에 비해 권장할 만한 것이 도저히 못 된다." 이는 군주 개인에게도 좋지 않다. 사치스러운 군주는 사치를 부릴 수 없는 처지가 되면 더 빠르게 총신들을 잃는다. "군주는 줄 것이 바닥날수록 친구도 더 드물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오만함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지금 자신이 놓인 가장 좋은 위치 때문에,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땅과 시대가 가장 좋다고 믿는 실수를 범하기 때문이다.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역사에서 모든 것은 한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지식이 어떤 방향으로도 허약한 것이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가 좀체 멀리 내다보지도 못하고 좀체 되돌아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식은 품이 너무 좁고 수명이 짧으며, 시간의 폭도 소재의 폭도 빈약하다." 이걸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사치스러운 군주들은 그 한 페이지에서마저 불명예스럽게 남는다. 몽테뉴는 같은 이치로 신대륙을 정복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그들이 만일 우리의 신앙을 퍼뜨리고자 한 것이었다면, 그것이 확대되는 것은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하며, 전쟁의 필연성이 가져오는 죽음 정도로 만족할 일이지 마치 야생의 짐승들에게 하듯 무차별적으로 칼과 불로써 가 닿을 수 있는 모든 이를 도륙하는 짓을 거기 더할 필요는 없었다." 오만을 표현하기 위해 살육을 저지르는 이상, 신앙 같은 것들은 누구도 속지 않을 빌미에 불과하다.


그나마 몽테뉴가 살던 군주정의 시대가 끝나고 높은 사람들도 제 분수를 예전보다는 잘 아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요즘에도 정치인들은 민중으로부터 표를 받아 당선된 뒤 민중 위에 군림하는 임금처럼 살려고 애쓴다. 심지어는 저항하는 민중들을 짓밟으려고 전차를 동원한 일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수레는 아직도 똑바로 이해되지 못한 것 같다. 수레가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하는지 높으신 분들은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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