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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의 불편함에 관하여

「에세」 101

by 루너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 중 무엇을 고르겠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고를 것인가?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용의 꼬리라고 말하겠다. 용이라는 소속이 내 분수에 넘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머리라는 지위가 훨씬 부담스럽다. 머리는 멋대로 움직일 자유가 없지만 꼬리는 아무렇게나 움직여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나는 권세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권세의 효용은 전적으로 주인의 그릇에 달려 있다. 리더 자리가 잘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자질의 차이일 뿐, 권세의 효용 자체를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몽테뉴가 지적하는 권세의 맹점에는 동의한다. 권세가 있으면 좋은 말만 들으며 산다. 사랑스러운 말만 하는 총신들은 쉽게 볼 수 있지만 바른 말만 하는 충신은 드물다. 이렇게 허위 속에 파묻혀 살다가 사리분별을 하는 안목마저 잃으면 군주는 폭군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당신 앞에 무릎을 꿇을 만큼 그토록 많은 권능을 가진다는 것은 가련한 일이다. 그대의 운명이 사귐과 어울림을 그대로부터 너무 멀리 내던져 버리며 그대를 너무 외따로 서 있게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특히 어떤 분야에 권세를 갖고 있으면 자신의 모든 행동이 그 분야와 연결되어 해석되기 마련이다. "왕들에게는 오직 왕위와 직접 관련되고 왕위에 소용되는 행위, 왕의 책무를 수행하는 일들로써만 그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도록 허락되어 있다. 왕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왕으로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앞으로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 무게를 감당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실패한 경험들이 제법 많아서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런 내 처지를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부려서는 안 될 욕심을 분간하게 됐으니 기쁜 일이라 여기며 산다. 가끔 내가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고 불합리한 모습을 보이는 사회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르기는 하지만, 내가 지휘자의 자리에 있어도 아무것도 못 할 것을 생각하면 금방 진정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선거일에 도장을 찍어 주는 정도의 권세로 만족하며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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