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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를 읽은 소감

「에세」 에필로그

by 루너

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몽테뉴와, 그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유려한 해석과 풍부한 각주를 제공한 역자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


「에세」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은 확신이 아니라 의심이다. 나는 「에세」를 통해 사람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이며 사람이 얼마나 겉멋에 찌들어있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사람이 기대고 있는 이성이나 사람이 타고난 감성은 완벽해 보이지만 실상은 불완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역사에 남을 실수를 저지르고 「에세」 같은 곳에 영원토록 박제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몽테뉴가 그랬듯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의 현명함조차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드러났으니, 우리는 확신에 찬 행동들을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정도로 의심에 빠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걷는 모든 길에 의심을 동반하자는 것이 퓌론의 가르침이자 몽테뉴의 골자이다.


반복되는 풍파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다가 마침내 자신에 내재한 경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성에 의해 후천적으로 심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에게 자연이 선물한 것이다. 이것이 마음에 안 들면 이성의 힘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성이 우리를 모든 고난으로부터 구제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끝없이 나아지는 것을 추구해야 하지만,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경향이 이끄는 곳이다.


우리는 세상을 자기 생각에 걸맞게 만드는 작업보다 세상 일을 수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세상을 탐구해서 제 나름의 구조를 만들고 삶의 활로를 얻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어떤 낯섦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변화가 닥치든지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늘 열어 두는 자세, 그것이 몽테뉴의 자세이자 내가 그를 동경하는 이유이다.


이것으로 「에세」 읽기를 마친다. 황금 같은 글귀들 때문에 종종 찾아볼 일이 있을 것 같지만, 당분간은 다른 책을 읽어야 해서 손을 못 댈 것 같다. 책꽂이에 쌓인 책이 많다. 한편 글 하나하나에 코멘트를 다는 작업이 재밌고 보람찼는데, 다음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이런 식으로 감상해 보려 한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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