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함에 관하여

「명상록」 2권

by 루너

「명상록」 2권은 우주의 이치,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도출되는 무상함을 주로 다룬다. 사실 이런 분류는 아우렐리우스의 생각을 내가 멋대로 재단하는 감이 있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일관성을 위해 가공이 불가피하다고 변명해 본다.


본격적으로 「명상록」 독해에 들어가기 앞서 쓴 글에서 나는 스토아 철학의 중심 원리를 간략히 소개한 바 있다. 간단히 말해 우주의 만물은 '좋음(善)의 실현'을 목적으로 설계됐다는 견해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신들에게서 오는 것은 모두 섭리로 가득 차 있다. 만물은 이 원천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거기에는 필연이 있으며, 이것은 모든 우주의 이득을 위해 존재하고, 그대는 그 우주의 한 부분이다." 한편 스토아 철학이 '영겁회귀'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고도 말했는데 이도 아우렐리우스의 글에 드러난다. "첫째로 태초부터 전해 내려오는 모든 것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윤회하므로, 인간이 똑같은 사물을 100년 동안 보든지, 200년 동안 또는 무한히 긴 세월을 두고 보든지 거기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이런 세계관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인간은 덧없는 필멸자이다. 신은 인간의 삶에 끝을 정해두었고, 그 끝을 피한 자는 없다. 또 인간이 삶을 아무리 지속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인간이 남긴 것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원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운명이다. 인간의 탐구는 세상 이치를 바꿀 수 없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일지라도 위대한 존재는 아니다. 심지어 인간 중에서 황제라는 특별한 위치에 오른 아우렐리우스 본인도 그렇다. "내가 어떤 존재건 간에, 다만 하나의 육체와 호흡과 지배적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차피 끝날 삶을 방종하게 살아도 될까? 아우렐리우스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합리적인 동물의 목적은 가장 존중해야 할 오래되고 바른 이성과 율법에 따라야 한다." 인간은 자연이 정해둔 규칙을 어기고 자신만을 위해 살고자 할 경우 오히려 스스로에게 해로운 짓을 하게 된다. 우주의 목적은 '좋음의 실현'이다. 이것을 파악하고 우주의 활동을 파악하고 동참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다. "이것만은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즉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또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나는 무엇의 한 부분이며 또한 무엇의 전체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자연의 일부분이므로 언제나 자연에 좇아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방해할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한 불만을 버리고 오직 이것이 마지막 일인 것처럼 생활에서 하나하나 실천해 나간다면, 그대는 스스로 안정을 얻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세계관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 자애로운 신이 우리를 악의 편으로 휘몰아 넣지 않을 테니 만인에게 부여하는 죽음 또한 악은 아니다. 애당초에 삶과 죽음, 쾌락과 고통 같은 것들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것들은 아우렐리우스에게 선도 악도 아니다. "죽음이란 다만 하나의 자연 작용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또한 자연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죽음을 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일과 모든 운명을 자기 자신이 태어난 원천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받아들이며, 끝으로 죽음을 모든 생물이 그 구성 분자로 돌아가는 일이라 생각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들이 전적으로 아우렐리우스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궁전에서의 음모, 전장에서의 위협 등을 생각하면 아우렐리우스의 삶은 사방이 죽음으로 에워싸인 격이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마주하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런 생각을 기록한 것 같다.


나는 스토아 철학의 전제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주가 윤회한다는 사상은 마땅히 증명할 방법이 없고, 신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우주의 좋음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소임을 파악하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존경한다. 자신의 본분을 착각하고 행동했다가 파멸하는 사람들이 많다. 운명을 수용하는 자세가 겁쟁이처럼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라면 괜한 다툼을 하느니 차라리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전 02화소유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