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

「팡세」 3장

by 루너

이성에 따를 것을 종용하는 논리들은 보통 이성이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올바른 귀결로 이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파스칼은 이런 견해를 단호히 부정한다. "사물들이 그 특징이 다양하듯, 영혼도 그 경향이 다양하다. 사람들은 같은 일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사람은 함수가 아니다. 다양한 사건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낼 수 있으며, 심지어 같은 사건일지라도 일관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비일관성은 「에세」에서 몽테뉴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파스칼은 이런 문제의 대표적인 결과로 '폭정'을 든다. 파스칼은 폭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폭정은 다른 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어떤 한 길을 통해 얻기를 원하는 것이다." 즉 통치자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Justice)를 정의(Definition)하고, 다른 가치들을 이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힘의 논리를 내세워 자신에게 충성하는 것을 정의로 규정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개념들을 비논리적으로 묶는 일인데도 폭정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정치가 '관습'에 기대기 때문이다. 물론 관습은 공적인 정의를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고착된 이상 사람들의 이성은 관습에 복종하며, 나아가 관습을 지지하기 위해 윤리관을 비틀기도 한다. "자연법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타락한 대단한 이성이 모든 것을 타락시켜 버렸다. 이성만을 따를 때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은 없다. 관습은 단지 그것이 공인되었다는 이유로 공평한데, 이 점이 바로 관습의 권위가 갖는 신비로운 기관이다. 유행이 매력을 만드는 것처럼 정의도 만들어 낸다."


관습은 물론 시대와 장소마다 다르다. "하나의 자오선이 진리를 결정한다. 몇년 새 소유권에 관한 기본법이 바뀐다." 즉 관습이 시대와 장소마다 다르니, 이를 보좌하기 위해 뒤틀린 이성도 시대와 장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파스칼에게 인간 이성은 전혀 보편적이지 못하다. "사람의 변덕스러운 성격이 너무나 다양해서 보편적인 법이란 게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이 흔들린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이성은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정말 이성이 올바르다면 우리는 관습의 부조리를 깨닫고 옳은 길만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그렇지 못하다. "현재의 기쁨이 거짓이라는 느낌과 존재하지 않는 기쁨의 부질없음에 대한 무지가 우리의 변덕을 야기한다."


파스칼은 이를 극복할 방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을 기만하는 장벽을 걷어내는 일이다. 즉 이성이 관습에 집착하는 이유가 되는 '안정'의 헛됨을 인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 자신을 아는 일도 중요하다.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세상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적어도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보다 더 옳은 일은 없다. 만약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매우 진지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어떤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최고선에 대한 탐구이다."


파스칼의 이런 통찰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나는 내가 예의범절이라고 믿는 습관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었다. 뜯어보면 허례허식으로 밝혀질만한 것들이 많고, 자아를 스스로 말살시키는 요인들도 많다. 그것들에 단지 관습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복종하고 있었다. 파스칼의 권유대로 나의 최고선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최고선'이라는 말 자체가 추상적으로 들린다. 영혼의 세계를 믿지 않는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당장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중요하다. 이익의 중요성은 이성의 중요성만큼이나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익과 정의를 양립시킬 수 있는 사상을 구축하는 일이 내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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