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의 이유]

「팡세」 5장

by 루너

고대 철학자들은 모든 현상의 원인을 이성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었다. 우주에 내재되어 있는 이성이 사물들을 각자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파스칼은 이런 전통을 거부하고, 오직 힘이 현상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유일한 보편 규칙은 일반적인 일에 대해서는 법이고,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다수이다. 이는 어떤 연유에서인가?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힘에서 오는 결과이다."


우리는 이성에 정의를 결부시킨다. 그런데 막상 정의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사람마다 대답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정의가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반면 힘은 정의에 비해 훨씬 가시적이다. "정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힘은 매우 쉽게 식별되며 토론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의에 힘을 부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힘이 정의를 반박하여, 정의는 옳지 않으며 옳은 것은 바로 힘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정의로운 것이 강한 것이 되게 할 수 없어서 강한 것을 정의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파스칼의 세계관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사욕과 힘은 모든 행동의 원천이다. 사욕은 자발적인 행동을 만들어 내고, 힘은 본의 아닌 행동을 만들어 낸다." 염세주의적인 성격이 다분하지만, 당대까지 지속되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현대적인 시선에서 세계를 관찰한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한편 이런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인간사를 비참하게 볼 수밖에 없다. 파스칼의 말대로라면 사람들은 이성, 즉 정의와 진리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고 힘을 그것들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분명 그들의 생각 속에 있다. 그러나 진리는 이 생각이 만들어지는 지점에 있지 않다." 이성이 타고난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즉 이성을 똑바로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파스칼은 아직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파스칼은 힘의 논리를 인정하면서도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는 않는다. "정의로운 것을 따르는 것은 옳은 일이다. 가장 강한 것을 따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력하다. 정의가 없는 힘은 폭정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부인된다. 왜냐하면 악한 사람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의가 없는 힘은 비판받는다. 그러므로 정의와 힘을 함께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것은 강해야 하며, 아니면 강한 것은 정의로워야 한다."


나는 이 말을 '정의에 힘을 부여할 존재'로서 신을 갈구하는 말로 해석한다. 오직 신성한 권위만이, 세상의 모든 권력들보다 위에 있는 가장 강한 존재만이 자신의 정의를 세계에 관철할 수 있다. 가장 강한 힘이 요구하는 정의가 세상의 정의라면, 그 힘의 주인이 모든 개념을 타당하게 바라보는 신일 때 정의가 최선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나는 여기에 이렇게 덧붙여 본다. 현대에 신을 믿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그러므로 신의 규율로부터 무언가를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지도자, 세계의 정점에 있는 지도자가 정의를 올바르게 알고 이를 세상에 요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신처럼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의 철인 왕과 같은 아이디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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