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

「팡세」 6장

by 루너

파스칼은 인간의 이성의 결점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이런 비판을 계속 읽자면 우리의 모든 판단이 무용지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유를 포기해야 할까? 어차피 세상사를 오판할 운명이라면 모든 것에 회의주의를 적용해야 할까? 파스칼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유하는 능력이 인간과 다른 존재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유하지 않는 인간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돌이나 짐승일 것이다."


우리의 판단이 잘못된 이유는 우리가 이성에'만' 기대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이성에 더해 심정을 이용할 것을 주장한다. 우리 눈앞의 사물들을 판단할 때는 이성으로 족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원리들을 생각할 때는 심정을 사용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높은 차원의 원리란 공간, 시간, 운동, 수와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심정은 공간에 세 개의 차원이 있고, 수는 무한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성은 한 수가 다른 수의 두 배가 되는 두 개의 제곱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원리는 느껴지는 것이고, 명제는 결론지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른 길을 통해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확실히 이 세계를 서술하는 과학은 쉽게 배울 수 있지만, 과학 공식 너머의 우주의 기본 원리는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형이상학은 논리보다는 상상과 믿음에 기초한다. 즉 논리적으로는 취약하다. 하지만 형이상학의 뼈대를 갖춘 세계관은 역설적으로 자명하다. 물론 만인에게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판단에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는 이성에 더해 당연시되는 믿음의 힘이 필요하다.


몽테뉴가 설파한 회의주의, 즉 퓌론주의는 좋은 태도이다. 우리의 이성을 잘못 사용할 바에는 안 쓰는 것이 차라리 낫다. 하지만 퓌론주의가 곧 탐구를 중지하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이성 너머를 보는 힘으로서 믿음에 투신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분명 한계선이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 한계선을 인식하고 그 너머로 모험할 능력도 있다. "인간의 위대함은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데에서 위대하다." 우리는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인식 저 너머로 뛰어볼 용기도 내어보아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현상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