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 7장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두 태도 중 하나를 취할 수 있다. 한 쪽은 인간의 이성을 의심하며 판단을 유보하는 회의주의이다. 다른 한쪽은 어차피 불완전한 이성이니 모든 판단이 옳으며 자신의 판단도 옳다고 믿는 독단론이다. 회의주의자들은 어떤 진리도 확실하지 않다고 여긴다. 어떤 원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자연스럽게 느끼는 일이다. 반면 독단론자들은 그 논리의 기반이 서투르기 때문에 금방 반박되고 만다. "자연은 회의론자를 좌절시키고, 이성은 독단론자를 좌절시킨다." 그러나 파스칼이 보기에는 독단론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는데, 만약에 독단론이 성심에 기반하고 있다면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독단론이 신앙에 의거한 것이라면 권위를 얻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나는 파스칼의 믿음이 썩 유효하진 못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회의주의는 신앙마저도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을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한, 독단론은 기반이 지나치게 취약하다. 하지만 파스칼이 둘의 상호보완성을 지적한 것만은 유효하다. 회의론은 인간에게 필요한 진리를 제공하지 못해 인간을 방황하게 만들고, 독단론은 인간에게 진리와 논적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 두 태도를 아우를 수 있는 태도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파스칼의 종교론은 절충안에 가깝다.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되, 이성 너머의 영역에서 우리를 다스리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즉 이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성에, 이성이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은 믿음에 기대는 것이 파스칼의 제안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이성을 확대할 수 없지만 인간을 초월할 수 있다. "인간은 무한히 인간을 초월함을 알아라! 당신이 모르는 참된 상태를 당신의 주인에게 배우라.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라."
우리는 이성을 갖고 있기에 자랑스러운 존재지만 이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참한 존재이기도 하다. 파스칼은 이 모순을 꼬집는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를! 왜냐하면 자신 안에 선을 행할 수 있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있는 비속함을 사랑하지 말기를! 자신을 경멸하기를! 왜냐하면 이 능력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제시한 절충안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이성을 따르되, 이성 너머의 것에 귀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자연스러운 능력을 무시하지는 말기를! 자신을 증오하고, 자신을 사랑하기를! 인간은 자신 안에 진실을 알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지속적이거나 만족할 만한 진실은 결코 가지고 있지 않다." 결국 불완전한 판단력, 즉 자신의 정념과 사욕을 극복하고 오직 신의 가르침으로부터 도덕 판단의 근거를 찾는 일이 인간이 윤리적으로 완전해지는 길이다. "나는 인간이 자신 안에서 결정을 강요하는 사욕을 증오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선택할 때 사욕으로 인해 눈멀지 않고, 선택했을 때에는 사욕이 그를 막지 못하도록 말이다."
사실 종교에서 말하는 가르침들은 신의 유무와는 별개로 유익하다. 기독교에서는 사랑을 가르치고, 불교에서는 자아를 가르친다. 각자 미묘한 차이들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물론 테러와 속임수를 통해 구현되는 악성 종교들을 걸려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종교의 가르침들은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믿음은 차치하고 그것들을 일종의 정언 명령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세상 사는 일이 한결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