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

「팡세」 10장

by 루너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주장했듯이, 사람들의 목표는 행복이다. 어떤 행위도 결과가 가져다줄 행복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은 드물다. 세상이 각박한 탓이다. 파스칼은 이런 조건 하에서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고민했다. 모든 행동이 저마다의 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덕, 불륜, 전쟁 같은 것들이 끊이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행복을 좇으면서 잘못된 행동을 할까?


파스칼은 인간이 신을 떠났기 때문에 행복을 잘못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류를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 참된 선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한 세계가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선은 줄어들지도 않고 시기도 없이 동시에 모든 사람이 소유할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본의 아니게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시기와 경쟁을 일으키는 물질적인 대상으로부터 행복을 찾는다. 이런 대상은 참된 선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한계가 있는 물질들은 소유권 다툼을 일으킬 것이며, 설령 소유권을 얻는다 해도 다음 경쟁과 세월을 거치다 보면 내 손에서 빠져나간다. 그야말로 헛된 행복인 것이다. "현재가 우리를 만족시켜 주지 않기 때문에 경험은 우리를 속이고, 불행에서 불행으로, 불행의 영원한 극점인 죽음에까지 우리를 이끌어 간다."


파스칼은 최고의 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아마 선악과를 먹기 전에 모든 것이 행복했다는 에덴동산의 신화에서 나온 발상으로 보인다. 신과 함께 할 때 인간은 신의 가호를 의심 없이 받으며 더없이 행복해했다. 하지만 신을 등진 인간은 신의 눈길을 감시처럼 불쾌해하며, 신의 도움을 스스로 거절했기 때문에 신의 무한한 선물을 받지 못하고 유한한 것을 쫓아다닐 수밖에 없다. 파스칼은 이 모습을 되돌리기 위해 신에게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권한다. "신앙 없이는 어느 누구도 모두가 계속해서 겨냥하는 행복에 도달하지 못했다. 신만이 인간의 참된 선이다."


신의 존재를 현대인이 납득할 방식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신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신의 존재가 의심스러워서 믿지 않는다. 다만 신이 있다면, 즉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면 자신에게 모든 것을 갑절로 되돌려줄 존재가 있다면, 우리 마음이 편해지기는 할 것이다. 그래서 종교를 비판하더라도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함부로 비판하기 어렵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파스칼의 믿음이 종종 광신으로 보여도 믿음 자체를 꺾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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