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 9장
9장에서 파스칼은 철학자들을 비판한다. 철학자들은 각자가 말하는 이론이 옳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생각 아래에 사람들이 머물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여러분 자신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거기서 여러분의 행복을 찾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파스칼은 이성과 별개로 존재하는 본능 때문에 사람들이 일개 철학자의 생각 안에 머무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를 밖으로 내쫓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본능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밖에서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의 정념은 자극하는 사물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를 밖으로 내몬다. 외부의 사물들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가 생각도 하지 않는데 우리를 불러낸다. 사람들은 철학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을 믿는 사람들은 가장 공허하고 어리석다.
파스칼의 주장은 굉장히 과격하다. 파스칼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모든 철학들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신만이 찬양받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 철학자들의 죄라는 것이다. "그들이 하느님을 알았음에도 사람들이 오직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만 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에게 머물기를 원했단 말인가."
나는 이번 장만큼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평한다. 파스칼은 철학자들의 이상을 자연스레 신과 결부시키는데, 신의 이미지가 개입하지 않은 사상까지도 신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신을 생각하지 않고 낳은 사상이 신을 숭배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다만 '신'이라는 단어를 다른 것들, 이를테면 '지혜' 같은 것으로 대체한다면 파스칼의 지적은 타당하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저작에 자신의 이름을 거의 넣지 않았다. 이는 오직 자신의 저작 안에 담긴 개념들이 탐구의 대상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반면 키케로는 저작을 통해 남을 자신의 명성에 크게 집착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몽테뉴가 「에세」에서 호되기 비판할 빌미가 되기도 했다. 철학자들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생각하는 자신의 이름'을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순간 철학은 배움이 아니라 치장에 불과하다. 지혜로운 자라면 명성의 헛됨 또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