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할 때가 위험하다

「에세」 6

by 루너

이번 글은 저번의 글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힘과 힘의 대결만 정정당당하게 여겨지던 고대와는 달리 몽테뉴의 시대는 권모술수도 하나의 방법으로 인정한다. 키케로는 "누구도 타인의 어리석음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지만 이 규범은 몽테뉴의 지적대로 전시에는 통하지 않는다. 물론 이 전략들을 놓고 교활하다는 비난을 할 수는 있겠지만, 아리오스트의 말대로 "행운으로 얻었건 꾀로 얻었건 승리란 언제나 가상한 것"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할 때 적을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적을 믿어보기로 할 수 있는데, 특히 정전을 위한 협상을 진행할 때가 그렇다. 그런데 몽테뉴는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몽테뉴는 이번에도 다양한 사례들을 인용하는데, 모두 협상을 하려 나섰다가 배반당한 사례들이다. 그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그 수가 6가지나 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나는 '협상의 시작'과 '믿음의 시작'을 사람들이 혼동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협상은 믿음이 자리 잡도록 하는 단계인데, 이미 협상의 상대로 삼은 순간 믿음이 성립한다고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짧게 말하자면 기대가 현실을 가리는 것이다. 적은 항상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택지를 고를 것이다. 물론 그 선택지들 중에 우리에게도 유리한 선택지가 있고, 협상을 거치면 그 선택지를 고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몽테뉴의 말대로 "실행 각서에 마지막 도장을 직기 전에는 서로에게 신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실행 각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 적의 눈에 우리를 배신하고 유린하는 것이 마냥 유리해 보인다면 적은 언제든지 우리와의 선택지를 파기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전략은 소위 '낭만'이 없다. 알렉산드로스는 "승리를 훔치는 것은 내게 합당치 않다. 승리를 수치스러워하느니 차라리 운명을 한탄하는 편이 낫다."라면서 야습을 거부했는데, 이런 태도가 확실히 멋있기는 하다. 이런 태도로만 세상이 굴러간다면 차라리 좋을 텐데, 주변을 섣불리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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