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행동은 의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에세」 7

by 루너

"죽음은 우리가 지닌 의무를 모두 면제해 준다고들 한다. 나는 이 말을 이상한 방식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알고 있다." 이번 글의 첫 문장이다. 우리는 죽은 이후 세상을 통제할 능력이 없지만, 유언을 통해 우리의 의지를 계승할 수는 있다. 그런데 몽테뉴가 보기에는 이를 악용해 부도덕한 의지를 이어가면서 자신은 죽음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사례가 있던 것이다. 그 예시로 유언으로 협약을 흔드는 행동을 지시한 영국 왕 헨리 7세, 임종 직전에 비밀을 누설한 석공이 나온다.


몽테뉴가 보기에는 이런 행동들이야말로 비겁한 행동이다.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이 그들의 진짜 바람이라는 것인데, 그러면 그들은 삶 내내 거짓말을 한 셈이다. 더구나 맹세를 깸으로써 죽은 후의 명예와 양심을 버리는 셈이니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행동이다.


비단 죽고 나서야 타인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는 것도 문제지만, 죽고 나서야 가로챈 남의 재산을 돌려주는 행동 또한 문제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죄를 씻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죽고 나서야 손해를 보고 남의 손해를 메꾸려는 생각은 값진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몽테뉴는 이런 이들에게 이와 같이 지적한다. "그들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무엇으로 빚을 갚아야 마땅하다. 무겁고 힘든 책임을 감당할수록 그들의 만족감은 더 정당하고 온당한 것이 된다. 속죄하려면 짐을 져야 마땅하다."


반면 몽테뉴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례도 나오는데, 에그몬트 백작의 사례이다. 에그몬트 백작과 혼 백작은 알바 공작과 대립 중이었다. 대립 중에 알바 공작이 항복을 권고했는데, 에그몬트 백작은 혼 백작에게 이 협상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러나 이것은 계략이었고, 항복하려던 두 사람은 유인되어 붙잡히고 만다. 그러자 에그몬트 백작은 자신의 말을 믿고 항복하러 간 혼 백작이 마음에 걸려 자기 먼저 처단하라고 요구한다. 몽테뉴의 표현을 빌리면, "죽음으로써 혼 백작에 대한 짐을 벗고자 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에그몬트 백작의 경우 비록 약속을 이행할 능력은 자기 손 안에 없었지만 영혼과 의지는 자신의 약속에 충실했으니, 혼 백작은 죽고 그 혼자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분명히 그 의무를 이행한 셈이다."라고 몽테뉴는 평한다.


이번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과 수단을 넘어서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일의 결과나 이행은 완전히 우리 능력 밖의 것이고, 우리 능력 안에 있는 것은 정녕 우리의 의지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지켜야 할 의무의 모든 원칙들은 의지에 근거를 두고 세워진다." 우리는 모든 행동이 올바르게 돌아가게 할 능력이 전적으로 부족하다. 결국 우리가 행동을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행동의 결과보다 의지여야 한다는 것이 몽테뉴의 의견이다.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한다. 사실 이 의견은 이전 글에서 설명한 세태와 상치된다고 생각한다. 승리를 위해서는 교활함도 용서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죽은 이후까지 올바른 의지를 관철시킨다는 것이 전략가들에게는 옹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한 의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활함보다는 정직함이 더 높게 평가받아야 사람들이 계속 정직함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세상보다는 서로가 미련할 정도로 정직한 세상이 더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몽테뉴와 같은 맹세를 해본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삶이 먼저 공공연하게 말하지 않은 것을 내 죽음이 말하게 하지는 않겠다." 나는 죽음을 도피 수단으로 쓰지 않고 죽은 뒤에도 내 모습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남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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