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9
혹시 이런 경험이 있는가? 어떤 잘못을 감추려고 거짓말을 했는데, 꾸민 내용이 허술해서 그때그때 말을 지어내다가 결국 거짓말들끼리 꼬여서 들통난 경험이 있는가? 나도 그런 적이 많다. 희한하게도 진실은 생생히 기억나는데 그것을 덮으려고 꾸며낸 거짓말은 내가 만든 것임에도 잘 기억나지 않아서 결국 빈틈을 드러내고 만다. 이렇게 보면 거짓말을 잘 하게 하는 능력은 의외로 기억력이다. 거짓말을 빈틈없이 꾸미고 그것을 기억해서 상대의 추궁에 답변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글에서 몽테뉴는 자신의 기억력이 형편없다고 운을 뗀다.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약속을 잊어버린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푸념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 덕에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만 뛰어들 수 있는 영역, 예를 들어 야심을 갖고 어떤 계획을 짜는 것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긍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의 말들을 잘 기억하면 거꾸로 자신의 정신과 판단력을 간과했을 것이라는 말도 한다. "기억력 덕분에 남들의 착상과 견해가 또렷이 생각났더라면, 세상 사람들이 그러듯이, 나 자신의 정신과 판단력이 가진 힘을 써 볼 생각도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자취를 따라가기만 하면서 내 정신과 판단력은 편히 쉬고 늘어지게 놔두었을 것이다." 자신이 받은 모욕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장소를 다시 찾을 때마다 신선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몽테뉴는 기억력에 관한 논의를 거짓말에 관한 논의와 연결한다. 기억력이 좋으면 세세한 것도 잘 기억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때 핵심에서 벗어나 자잘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걸 주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 점 때문에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유리하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다 보면 세세한 추궁에 답하다가 말이 꼬이고는 하는데, 기억력이 좋다면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기억하여 그나마 능숙하게 상황을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기억력이 좋지 않다면 이전 진술을 번복하는 새로운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날 것이다.
이런 결점은 참과 거짓이 완전히 둘로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한다. 참과 거짓은 이분법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하나인데 거짓은 무한히 꾸며낼 수 있어서, 그 다양한 가지들끼리 충돌하면 결국 들통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몽테뉴는 이런 멋진 말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만약 진실과 마찬가지로 거짓도 단 하나의 얼굴을 가졌다면 대처하기가 나을 것이다. 거짓말쟁이가 하는 말의 반대를 사실로 여기면 될 테니까. 그러나 진실의 뒷면은 무수한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영역 또한 무한하다. 퓌타고라스 학파는 선을 확실하고 한정된 것으로, 악은 무한하며 불확실하다고 여긴다. 과녁에서 빗나가는 길은 무수히 많지만 과녁에 도달하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소질과는 별개로 몽테뉴는 거짓말 자체를 악덕이라고 생각한다. 화형에 처해도 정당하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렇게 강조하는 까닭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모든 것이 '말'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의 거짓말하는 습관은 일찌감치 바로잡지 않으면 아이가 성장하면서 습관도 성장해서 참말을 아예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몽테뉴의 의견이다.
나는 몽테뉴의 의견에 대체로 공감하고, 특히 진리는 하나지만 거짓은 무한해서 거짓말이 어렵다는 견해에 크게 공감한다. 하지만 거짓말이 무조건 악덕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물론 자기 정신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무조건적으로 배격하는 것이 옳다. 거짓말이 판을 치는 시대에 솔직함 자체가 높은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에 거짓말을 금하는 격언은 고매한 가르침일 뿐 의무가 되기는 어려운 감이 있다. 더구나 남을 위해서 하는 거짓말도 있지 않은가. 선의의 거짓말은 의도에 따라 예외적으로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