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끼리 회동하는 의식에 관하여

「에세」 13

by 루너

만약에 집에 손님을 초대했는데 손님과 연락이 안 된다고 해보자. 그러면 상대를 마중 나오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끝까지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을까? 몽테뉴는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르그리트 왕비의 말을 인용하는데, 그녀에 따르면 손님과 길이 어긋날까 하는 염려 때문에 기다리는 편이 좋으며 손님이 돌아갈 때 배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상대가 더 높은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이번에는 집이 아닌 어떤 장소에 여러 사람이 모인다고 해보자. 이 경우는 누가 먼저 와야 할까? 몽테뉴에 의하면 이번에는 지위가 낮은 사람이 지정된 장소에 먼저 와 있어야 한다. 다만 왕들끼리 모일 때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 경우 더 높은 자가 약속 장소의 주인보다도 먼저 와야 한다. 그 이유는 힘이 덜한 자들이 더 강력한 자를 만나러 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몽테뉴의 시대의 예법은 복잡했다. 그 의미를 안다면 납득할 수는 있지만 하나하나 감안해서 실천하기에는 소요가 너무 크다. 몽테뉴의 표현을 빌리면 '끊임없는 예속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몽테뉴는 예법에 너무 얽매이는 것보다 적당히 융통성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나는 기꺼이 이 예법을 따르려 하지만 그렇다고 비굴할 정도로 거기에 얽매여 내 삶을 답답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예법에는 이런저런 귀찮은 형식이 담겨 있는데 실수가 아니라 잘 판단해 그것을 빼놓는 경우라면 그 때문에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 예의를 차리다 결례를 범하고 너무 정중해서 남에게 폐가 되는 사람들을 나는 자주 보았다."


몽테뉴는 좋은 사례로 클레멘스 교황과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회합을 인용한다. 그들은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프랑수아 1세는 필요한 준비를 지시한 뒤 일부러 도시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교황이 자기를 만나기 전에 이삼 일간 여유를 갖고 쉬도록 배려한 것이다. 거꾸로 교황의 땅인 볼로냐에 갈 때는 교황이 먼저 들어가게 하고 자신이 나중에 들어가서 예절을 지켰다고 한다. 예절을 융통성 있게 적용한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몽테뉴가 예법 자체를 허례허식이라고 비판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이의 예법을 안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그것은 우아함이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친숙해지는 과정으로 가는 첫걸음을 마련해 준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예를 보고 우리가 배우고, 또 우리에게 무슨 가르칠 만하고 전할 만한 점이 있으면 우리의 예를 돋보이게 제시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준다." 몽테뉴에게 예법은 만남의 형식이다. 그 형식에 따라야만 서로가 원활히 소통할 수 있다. 그 형식이 자신을 옥죄이지 않는 한에서 예법을 준수하자는 것이다.


나는 몽테뉴의 입장에 동의한다. 나는 군대에서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다. 군대는 철저히 계급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계급 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들이 엄격해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이런 경험이 있었다. 단체 채팅방에 간부님이 면담을 대신해서 최근의 심경을 말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대답을 적다 보니 긴 글이어서 간부님께 개인톡으로 보내드렸다. 응답까지 받았다. 1시간 있다가 단체 채팅방을 본 선임이 노발대발하며 내게 욕을 퍼부었다. 소위 '읽씹'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개인톡으로 보냈다고 해명하자 단체 채팅방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단체 톡방에서 혼잣말을 한 격이 돼서 예의가 아니라고 설명하며, 변명하지 말라면서 화를 더 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중간에 낀 사람이 예의를 운운하며 욕을 퍼붓는다니? 선임의 설명을 아예 납득할 수 없던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들끼리 일이 끝난 상황에서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임은 그 상황보다도 변명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났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례는 시작에 불과했다. 윗 사람한테 말할 때는 카카오톡이 아니라 직접 대면해서 보고해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전화를 하며, 전화를 안 받을 경우에는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등의 규칙을 알게 됐다. 이런 규칙들의 취지는 물론 이해할 수 있었지만, 덕분에 급한 대화를 제때 못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취지를 간신히 납득할 수 있는 예절들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을 망치고 있던 것이다. 나중에 내가 선임이 되고서도 이런 문제가 지속됐다. 예절을 잘 지키는 후임을 만나면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예절을 지키기 위해 위축돼있어서 할 말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후임들이 많아서 답답했다.


예절이 형식적으로나마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허례허식으로 여겨질지라도 만들어진 당시에는 어떤 실용적인 취지가 있었을 테니 당장 개정할 수 없는 한에는 이전의 질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더구나 예절을 지킨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한다는 뜻이니 마음은 전달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절이 사람들 사이의 일을 방해할 정도로 짐이 된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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