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힘에 관하여

「에세」 21

by 루너

이런 괴담들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형수의 눈을 가리고 팔에 용암을 붓는다고 한 뒤 미지근한 물을 부었더니 화상을 입은 이야기, 냉동 컨테이너에 갇힌 사람이 동사했는데 정작 냉동 컨테이너의 냉방 장치가 꺼져 있던 이야기. 이런 괴담들을 보면 상상이 사람을 죽인다. 용암을 붓는다는 상상이 화상을 일으켰고, 냉동 컨테이너가 켜져 있다는 상상이 동사를 일으켰다. 물론 이런 얘기들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고, 보통은 거짓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하지만 상상이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믿음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사례들은 꾸준히 누적되어 갔다.


몽테뉴는 이를 이용한 재밌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지인이 자신이 저주에 걸렸을까 봐 불안해하는 것을 보고, 그 저주를 푸는 마법을 창작해서 지인이 저주를 풀었다고 믿게 한 것이다.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을 이기는 것이 더 강한 마법이듯이, 상상의 힘을 이기는 것은 더 큰 상상이다. 이렇게 보면 미신을 믿는 사람들의 습성을 우습게 볼 일만은 아니다. 올바르고 강한 상상을 이들에게 부여하면, 이들은 누구보다 강하게 살 테니 말이다.


반면 상상이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사례는 지금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것이 그렇다. 어떤 일을 하기 전부터 안 될 것이라고 상상하면 진짜로 일이 잘 안되고, 그때부터 상상은 기억이 되어 실패를 계속 겪게 만든다. "상상이 수모를 맛보게 하면, 시작을 잘못한 탓에 낭패감으로 열이 받치고 부아가 치밀어 이 실패가 계속 이어진다." 예를 들어 나는 고등학교 시절 물리 선생님이 물리 수업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물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반쯤 포기했다. 그 결과 중간고사에서 40점대가 나왔다. 나는 이를 극복해 보려고 물리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도무지 물리와 친숙해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는 안 된다는 생각이 뿌리처럼 박힌 탓이었다. 결국 기말고사는 그보다 못한 30점대가 나왔다. 이 스스로에게 건 저주는 지금은 풀렸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에 더해, 새로운 마음의 결과로 고득점을 하는 상상의 결과로, 대학교에서 물리학개론 수업에서 A0를 받은 것이다.


상상의 지배는 육체에서 더 두드러진다. 신체 기관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감각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표정을 숨기기가 어렵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심장 박동을 조절하기 어렵다. 이것을 육체의 구속이라 보고 여기서 해방되려 하거나 육체를 의지대로 움직이려고 수양한 사람들이 많다. 엽기적인 사례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의지가 전능하다는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엉덩이로 하여금 원하는 만큼 방귀를 뀌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런 시도를 좋게 보지 않는다. 상상의 힘에 지배받는다는 것은 곧 마음의 순박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성을 바탕으로 생각을 속이는 것은 비판할 수 없지만, 이성이 신체 기관의 감각보다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솔직함이야말로 이상적인 덕목이다.


결국 상상의 힘의 쓸모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 같다. 자신이 하는 상상이 타당한지 검토하는 이성적인 식견 또한 필요하지만, 자신을 고양시키는 상상은 의도적으로라도 하면 좋을 것이다. 기적은 기적을 상상한 사람이 스스로의 손으로 이뤄내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