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을 함부로 판단하려 들지 마라

「에세」 32

by 루너

나는 사람들이 종교로부터 얻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위안이고, 하나는 가르침이고, 나머지 하나는 변명이다. 신이 자신의 믿음을 알아보고 보호해 줄 것이라는 위안, 신이 내려준 것에 따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은 대체로 좋은 것들이다. 그러나 어떤 일의 원인을 직시하지 못하고 오직 신의 섭리로만 해석하려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런 해석은 아전인수가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몽테뉴 또한 이런 해석을 비판하며 재미있는 예를 인용한다. 1569년에 있었던 종교 전쟁에서 개신교도가 라 로슐라베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 그들은 이 승리를 두고 하느님이 자기네 당파를 승인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고 선전했다. 같은 해에 그들은 몽콩투르와 자르나크에서 패배한다. 그러자 그들은 이 패배를 하느님의 부성적인 매와 벌이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같은 진영, 같은 명분을 둔 전투들에서 결과에 따라 하느님의 의지가 변한다는 것은 사뭇 인정하기 어렵다. 몽테뉴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한 자루를 빻고 두 번 방앗삯을 받는 꼴이요, 같은 입으로 더운 입김과 찬 입김을 내뿜는다는 느낌을 주기 십상이다.'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선인이라면 이 세상의 행불행이 아닌 다른 것을 희망해야 하고, 악인 또한 이 세상의 행불행이 아닌 다른 것을 두려워해야 함을 가르치시기 위해, 세상 일을 당신의 신비로운 뜻에 따라 조종하고 적용하여 우리가 어리석게 이용할 수 없게 하신다. 세상의 행불행을 인간적인 동기에 따라 이용하려는 자는 경박한 자이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하며, 나아가 이 말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타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만사를 자기 진영에 유리한 대로 해석하는 정치가들은 자신이 경박한 자가 아닌지 검토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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