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바쳐 속세의 쾌락을 피하다

「에세」 33

by 루너

"고통 없는 삶 아니면 행복한 죽음을. 사는 것이 고통일 때는 죽는 것이 좋은 일이다. 비참 속에 사느니 그만 사는 것이 낫지." 그리스 시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기 때문에 번뇌의 끝이기도 하다. 그래서 죽음을 구원의 궁극적인 형태로 여긴 철학자들이 있던 모양이다.


몽테뉴는 일레르 성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외동딸 아브라는 교육도 잘 받고, 부유하며,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런 여인에게 구혼자가 줄을 서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러나 성인은 딸이 세상의 쾌락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신에 뜻에 맞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랐다. 그래서 딸에게 가상의 약혼자를 꾸며 이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니 다른 남자의 구혼을 거절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속세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예 딸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곁으로 가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기도는 이루어졌고, 일레르 성인은 굉장히 기뻐했다. 일레르 성인은 딸이 하늘에 누리는 행복을 아내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아내는 이를 부러워해서 성인에게 같은 기도를 해달라고 집요하리만큼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아내도 기도의 결과로 딸을 따라갔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이 일화가 굉장히 괴상하게 느껴진다. 식인종에 관한 옹호보다 훨씬 더 그렇다. 죽음은 약효가 좋을지 몰라도 극약이다. 최후의 순간에 마셔야 하는 약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생명을 유지하면서 영혼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고 본다. 생명 또한 신의 선물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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