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는 가끔 이성과 보조를 맞춘다

「에세」 34

by 루너

나는 어려서부터 비틀즈의 「Let It Be」를 좋아했다. 유명한 곡이라 자주 접한 덕도 있지만, 어렸던 내게도 "Let it be."라는 문장이 심오하게 느껴졌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 정답이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오늘 읽은 글에서는 사실 별다른 교훈을 추출해낼 수 없다. 운수가 극적으로 좋거나 극적으로 나쁜 사람들을 열거할 뿐이다. 독을 탄 포도주를 적이 아닌 아버지가 마신 사람, 신부를 두고 체면을 지켜보려다가 교전에서 져서 망신을 산 사람. 성을 포위했는데 성벽이 저절로 무너진 사람, 반대로 성벽이 폭발했는데 한 덩어리로 땅 위로 솟아올랐다가 그대로 다시 가라앉아 별 피해를 입지 않은 성. 가슴속에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종양을 끌어안고 전쟁에 나섰더니 관통상으로 종양이 파괴되어 치료된 사람,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 도료로 범벅된 스펀지를 집어던졌는데 미완성된 부분이 보기 좋게 완성된 사례. 그밖에 몇 가지 사례가 더 있지만 너무 길어서 열거하지 않겠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로 하늘이 돕거나 하늘이 저지한 사례이다. 이전에 인용했던 제갈량의 말, "계획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몽테뉴는 메난드로스의 말을 인용한다. "운수가 우리 자신보다 일을 더 잘 처리한다." 나아가 "운수의 견해가 우리의 견해보다 낫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 힘으로 이루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는 내키지 않더라도 운에 맡겨서, 잘 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다. 삼십육계가 줄행랑이라면, 삼십칠계는 '렛잇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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