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小) 카토에 관하여

「에세」 37

by 루너

몽테뉴는 이번 글에서 소() 카토를 비평한다. 몽테뉴의 비평을 읽기 전에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보았다. 그는 로마의 정치가 대(大) 카토의 증손자이다. 그는 스토아 철학을 신봉하는 금욕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는 로마 공화정의 유지를 위해 카이사르를 견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견제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서 카이사르가 내전을 일으키게 되고, 카토의 세력은 내전에서 패배한다. 카토는 카이사르에게 투항하라는 권고에 '카이사르에게 관용을 입으면 카이사르가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라고 답하고 자살했다고 한다.


오늘날 그에 대한 평가는 갈리는 것 같다. 공화정을 끝까지 수호하려 한 충신이자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정의로운 사람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민중을 등한시하는 귀족의 권력을 지키려고 지나친 노력을 하다가 민중의 편에 선 카이사르에게 패배했다는 평가도 있다. 카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예시가 있다. 그는 권력자로부터 혼인 동맹 요청을 받자 금슬이 괜찮던 두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를 후처로 보냈다가, 6년 뒤에 권력자가 죽자 다시 재혼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는 태도로 살았다고 한다. 이 얘기는 카토가 쾌락과 애욕보다 실리를 추구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 카이사르는 「안티 카토」라는 글에서 이 사례를 두고 카토를 '권력자에게 굴복해 자기 아내도 바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몽테뉴는 카토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카토의 자살을 카이사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폄하하는 이들이 있던 모양인데, 몽테뉴는 여기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는 사람들이 낭설을 퍼뜨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에게 악의가 있거나, 아니면 자기네 능력 안에 있는 것만 믿을 수 있다고 여기는 악덕 때문이다. 혹은, 내 생각에 제일 가능성 있는 경우이지만, 미덕의 광채를 본래의 순수함 속에서 볼 만큼 강하고 맑은 시선도, 그럴 수 있게 훈련된 눈길도 갖지 못해서이다." 몽테뉴는 카토가 보여준 모습이 덕성과 굳건함의 극한이자 자연의 모범이었다고 칭송한다.


나는 솔직히 로마사에 대해 잘 아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카토에 대해 논평할 자격은 부족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들이 정말 옳은 것이라고 친다면, 카토는 정말 애매한 인물인 것 같다. 카토가 카이사르에게 굴복하는 것보다 목숨을 내놓는 것을 선택한 것은 대단하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태도는 그의 철학과 삶이 일치했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그가 자살할 때 「파이돈」을 읽었다고 하는데, 「파이돈」은 육신의 구속으로부터 영혼이 해방되어 행복에 이르는 과정을 논증하는 책이니, 그는 적어도 속세의 쾌락이나 권력에 굴복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의 시야가 좁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가 죽음까지 불사하며 수호하려고 한 정의는 어떻게 보면 모두의 정의가 아니라 이미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정의이다.


그런데 현대식 민주주의 개념이 없던 시대에 이런 태도를 기대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그에게 민중까지 아우르는 안목이 있었더라면 시대를 초월하여 훌륭한 것이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던 그를 매도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 시대에 맞는 규범을 갖고 있었을 뿐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제일 객관적일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결국 모든 당사자들의 모든 심리를 다 꿰뚫어 보아야 하고, 나아가 이들이 놓인 환경까지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기준으로 내린 판단은 진리라고 볼 수 없다. 그런 판단은 내가 옳고 나머지는 열등하다는 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카토를 찬양하는 몽테뉴의 의견에는 동조하지 않더라도 그의 시대를 고려했을 때 내가 가진 현대인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도 옳지 못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몽테뉴가 사람을 평가할 때 쓰는 원칙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하듯 나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잘못은 범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나와 다른 점들이 있으리라 쉽게 이해하는 것이다. 내 삶이 어떤 틀에 속해 있다고 느낀다고 해서, 남들이 다 그러는 것처럼 세상에 그것을 강요할 마음이 없으며, 살아가는 데는 서로 다른 수많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이해한다. 그리고 너나없이 모두가 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 사이의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내 의향이나 내 원칙으로 남을 구속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 고유의 모습에 맞게 옷을 입히는 정도인 것이다. 나 자신이 절제하지 않는다고 해서 수도사들의 금욕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높이 평가하기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나는 상상을 통해 쉽게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곤 한다. 그리고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판단할 때는 각자 한 사람씩 따로 보고, 일반적인 틀에 맞춰 나를 재려 들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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