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영광을 남과 나누지 않는 것에 관하여

「에세」 41

by 루너

"이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 가운데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것이 명성과 영광에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번 글의 첫 문장이다. 몽테뉴는 「홀로 있음에 관하여」 이후로 쭉 명성을 좇는 일이 헛되다고 강조한다. 대신 똑같은 말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저번 글에서 키케로를 필두로 명성을 좇는 자들을 비판했다면, 이번 글은 명성을 남에게 양보한 사례들을 열거한다.


비범한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떤 신하는 왕의 훌륭한 계획을 듣고 일부러 반대한다. 나중에 계획이 성공했을 때 예측에 실패한 자신은 낮춰지고 왕의 통찰력은 더 높아 보이도록 꾸민 것이다. 스파르타 장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향한 찬사에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스파르타에는 내 아들보다 훨씬 위대하고 용맹한 시민이 많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왕이 황태자의 승리를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원군을 일부러 보내지 않은 사례도 등장한다.


나는 뒤틀린 겸손을 경계한다. 남들을 높여주다가 자신의 위치가 정말 남들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겸손의 독을 마셔서 정신적인 위험에 처한 적이 있다. 몽테뉴가 소개한 사례들은 겸손을 발휘한 사례로 영영 기억될만하다. 특히 장군의 어머니가 한 말은 가슴을 울린다. 하지만 공을 세워도 남에게 양보하다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전혀 없다면 내심 박탈감을 느낀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다. 적당한 만큼은 명성을 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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