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판단의 불확실성에 관하여

「에세」 47

by 루너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잘못됐다고 생각했던 일이 좋은 일이 될 수 있고, 좋다고 생각했던 일이 안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당면한 사건을 두고 일희일비하지만, 결국 다 지나고 나서야 사건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심지어 결국 이런 논의는 결과론으로 번지고 만다. 몽테뉴의 말처럼, "어떤 일에 대해서건 좋게나 나쁘게나 아무 말이건 할 수 있다."


몽테뉴는 평소처럼 재밌는 예시들을 많이 들고 온다. 적을 도발해서 기를 죽이려 했더니 오히려 적이 분기탱천하여 기세를 드높여 아군을 부순 일, 군세를 강하게 밀어붙여서 항복시키려 했더니 오히려 응집력이 강해져 실패한 일 등이 있다. 아예 똑같은 문제를 두고 정반대로 행동한 사람들도 있다. 어떤 군대는 화려하게 무장해서 적의 기를 죽이려 했고, 어떤 군대는 수수하게 무장해서 적에게 자신들의 청빈과 검소를 뽐내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예시는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대결이다. "스키피오는 이탈리아 영토를 지키며 적과 싸우는 것보다, 적의 아프리카 영토를 공격하러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그의 승리였다. 반대로 한니발은 같은 전쟁에서 조국을 지키러 가기 위해 적국의 정복을 포기함으로써 자멸하고 말았다."


마닐리우스의 시구가 나온다. "흔히 잘못 택한 방책이 성공하고 혜안이 우리를 속인다. 운수는 반드시 도울 만한 대의를 돕는 것은 아니니, 가리는 바 없이 이편 저편을 떠돈다. 그것은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며 필멸의 존재들을 자기 법 아래 거느리는 더 높은 권능이 있기 때문이다." 몽테뉴가 첨언한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의 계획이나 결정도 그만큼 운명으로 매여 있고, 운은 우리의 생각마저 자기의 혼돈과 불확실성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다."


사람의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눈앞의 문제에 최선을 다해 뛰어들어 결과를 지켜보고, 결과가 좋으면 승복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른 결과를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름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