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軍馬)에 관하여

「에세」 48

by 루너

몽테뉴는 이번 글에서 군마 이야기를 한다. 군마에 관심이 없고 말에 타 본 적도 없는 나에게 솔직히 이번 글은 와닿지 않았다. 다만 문화적으로는 재미있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마가 기병들이 타고 다니는 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군마를 기병과 떼어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리가 자의식 없이 뇌의 명령대로 움직이듯 군마도 기병의 의지대로 움직일 뿐이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오늘 읽은 글에서 보니 군마는 의외로 자의식이 강하고 성질이 포악하다. 군마가 흥분하고 서로 싸우면 도무지 말릴 길이 없다고 한다. 또 군마는 적과 아군을 구분할 줄 알며 격전 중에도 명령을 받으면 창과 투창을 입으로 집어서 주인에게 갖다 준다고 한다. 놀라운 재주다.


그래서 기병들의 전쟁이 잦던 시기에 군마는 기병의 다리 이상의 존재로 중요하게 취급됐다. 기병이 군마에서 내리는 것은 무장해제와 동등하게 취급됐다. 로마인들은 실제로 지역민들의 반란을 진압하면 무기와 말부터 뺏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엄숙한 전투를 치를 때는 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다리만으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보병전을 고집했다고 한다. 군마에 마구를 씌워서 통제하는 일은 멋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군인들은 군마를 친구처럼 대했고, 상대를 대접할 때 군마도 동등하게 대접했다.


요즘은 음식점이 애견을 위한 메뉴를 파는데, 내가 보기엔 중세 시대에 군마를 대접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사람은 곁을 따라다니는 소중한 존재가 생기면 그것까지 자신들의 문화 속에 포괄하는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성을 가진 생물, 인간과 함께할 수 있는 모든 생물이 사람의 문화의 일부분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판단의 불확실성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