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49
초등학교 시절 같은 영어 학원을 다니는 사람 중 병적으로 유행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옷 브랜드에 서열을 매기고 다녔다. 상대의 서열은 상대가 입은 옷으로 정했다. 네파가 1등, 노스페이스가 2등, 나머지가 뭐였더라? 아무튼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필라 같은 상표는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나는 필라를 애용해서 난데없이 모욕을 자주 당했다.
옷 브랜드 열풍은 언젠가 노스페이스 열풍을 비판하는 풍조가 강해지다가 뉴스에 나오면서 사그라들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샤프 유행에 집착했다. 직접 샤프심 통으로 만든 샤프를 보물처럼 들고 다녔다. 내가 어디선가 선물로 일본에서 만든 젤리 샤프를 받자 샤프를 주면 안 되겠느냐고 구걸하며 쫓아다닐 정도였다. 그 열풍 이후로는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소문에 의하면 힙합이 유행할 때 쇼미더머니에 나갔다고 들었다.
어린 내가 보아도 그 사람은 경박했다. 유행은 겉치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수단의 하나이니 아예 무용하다고는 못하겠지만, 그 사람은 유행하는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유행이 그 사람이라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몽테뉴의 시대에도 그런 족속이 있던 모양이다. 몽테뉴는 이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요즈음 풍속이 가진 권위에 너무 쉽게 넘어가 눈이 먼 나머지 관행이 그렇다 싶으면 다달이 견해도 생각도 바꾸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마저 그렇게 이리저리 달리 생각하는 그 유별난 경박스러움은 한심하다." 내가 그 사람을 보며 떠올린 생각과 일치한다.
유행은 나날이 변한다. 사람들의 관습도 나날이 변한다. 그때그때 이유가 달라서 일반적인 법칙을 찾기 어렵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개념에 인간은 자기 사상까지 바친다. 이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이 가장 옳은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문화, 다른 시대의 사람에게까지 그 표준을 강요하니 문제가 생긴다. 가장 보편적인 문화는 서양의 문화겠지만, 그렇다고 서양의 문화만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다른 사람들을 평가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