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62
양심은 놀라운 힘이다. 몽테뉴의 말에 따르면, "양심은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 자신을 고발하며, 우리 자신과 싸우게 만들어 다른 증인이 없어도 우리 자신을 우리의 반대 증인으로 세운다." 에피쿠로스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떤 은신처도 악인에겐 소용없으니, 양심이 자기에게 저 자신을 폭로하니 숨었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심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1차 방어선이다.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을 높이 산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은 양심의 가책을 숨기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을 보면 경이롭다. 이들은 거짓말을 해서 들통나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처음부터 양심이 없던 것일까? 현대 정치인의 성품이 스키피오처럼 담대해서 그런 것일까?
몽테뉴는 고문을 비판한다. 고문은 양심이 있건 없건 죽음이 차라리 나은 지경으로 빠뜨려서 원하는 대답을 뽑아내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고문에 지쳐 거짓 자백을 한 사람들은 몽테뉴의 시대에도 있었고, 우리나라도 독재 정권 시절에 빈번했다. 인류는 시대가 변하며 교양으로 무장했다고 자평하지만, 인류의 영악함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선을 향한 의지, 그리고 그 의지가 발현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사회. 개인은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사회는 양심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아야 조화가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