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꼴레르,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

by 루너

나는 군 시절 자기개발서를 많이 읽었다. 인간군상 속에서 문득 "가장 훌륭한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라는 질문이 떠오른 것이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 내가 돼야 할 사람의 모습을 찾기 위해 책을 읽었다. 「브리꼴레르」도 군 시절 읽은 책이다.


브리꼴레르, 정말 생소한 단어이다. 무슨 의미일까? 브리꼴레르 개념을 창안한 사람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관찰하다가 발견한 '손재주꾼'에 브리꼴레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손재주꾼은 보잘것없는 판자조각, 돌멩이나 못 쓰게 된 톱이나 망치를 가지고 쓸 만한 집 한 채를 거뜬히 지어내는 사람이다. 충분한 재료가 없어도 예상 밖의 물건들을 유동적으로 재료로 써서 결과를 내는 융통성이 브리꼴레르의 핵심이다. 브리꼴레르는 무에서 유를 만들지는 않지만, 유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유를 만든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는 브리꼴레르를 연구하고 책을 썼다. 유영만 교수에 의하면 브리꼴레르는 간단히 말해 '실전형 전문가'이다. 책에 소개된 내용을 외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식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앞서 말했듯이 브리꼴레르는 남들도 이미 알지만 쓸 생각을 미처 못하는 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브리꼴레르는 기존에 알려진 방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브리꼴레르는 창의력이 무한하기 때문에 가능성도 무한하다.


유영만 교수는 일을 잘 한다고 해도 무조건 브리꼴레르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브리꼴레르의 궁극적 목표는 사랑이다. 자신의 기지를 발휘해서 세상에 유용한 도구들을 만들고 함께 누려야 브리꼴레르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전문가는 기능적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과 떨어져 살 수 없다. 「아웃라이어」라는 유명한 자기개발서에 의하면 "혼자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성공은 특정한 장소와 환경의 산물이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즉 세상과 격리돼있길 원한다면, 지식은 주머니 속의 보물이어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유영만 교수는 브리꼴레르의 지혜를 단순히 지혜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적 지혜'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단어인 '프로네시스(Phronesis)'를 대신 사용한다.


브리꼴레르가 얼마나 훌륭한 인재상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브리꼴레르는 히로나카 헤이스케처럼 창조하는 인재이다. 이미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는 것을 발판 삼아 미지의 영역을 누비는 것이 브리꼴레르이다. 나는 「브리꼴레르」를 읽는 내내 감격을 감출 수 없었다. 구식의 지식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서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는 경지가 존경스러웠다. 브리꼴레르야말로 나의 꿈이다.


꿈을 정했으면 꿈을 이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브리꼴레르가 되는 방법이 무엇일까? 유영만 교수는 브리꼴레르의 동의어로 '잡사'와 '지식 편집자'를 제시한다.


잡사는 섞을 잡(雜) 자에 선비 사(士)를 써서 여러 분야에 두루 능통한 사람을 가리킨다. 잡사는 이것저것 대충 건드려 보고 마는 절름발이 지식인이 아니다. 우선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남다른 전문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분야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분야에도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사람이 잡사이다. 물론 애정이 실천으로 이어져야 브리꼴레르가 완성된다. 여하튼, 브리꼴레르가 되려면 섣불리 이런저런 분야에 뛰어들어 경거망동하지 않고 우선 잘 하는 분야 하나를 갖춰야 한다. 일단 하나에 통달해야 나머지에도 손댈 자격이 생긴다.


지식 편집자는 말그대로 지식을 편집하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공부는 창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지식을 축적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브리꼴레르는 가진 지식들을 비교해 보며 경계선을 발견한다. 발견한 경계선이 곧 지식의 접합부이다. 브리꼴레르는 지식에서 비슷한 점들을 뽑아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그룹을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지식에서 다른 점들을 뽑아서 키메라를 만들기도 한다. 지식의 세계를 개척하는 마음으로 융합과 편집을 시도하면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다.


「브리꼴레르」는 우선 내가 닮고 싶은 인재상을 제시했고, 나아가 브리꼴레르가 되는 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아직은 어렵다. 편집과 융합은 자주 들어본 단어이지만 시도해 본 적 없는 행동이기도 하다. 나와 가까운 브리꼴레르를 찾아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면 더 수월하게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브리꼴레르」는 한 명을 소개한다. 다산 정약용이다. 나는 다음 글을 통해 다산 선생의 행적과 교훈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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