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72
갖기 쉬운 것을 탐하는 사람은 없다. 제목 그대로, 우리 욕망은 난관을 만나면 더 커진다. "우리의 욕망은 갖지 못한 걸 잡으려고, 손안에 있는 것은 하찮게 여기며 넘겨 버린다. 우리에게 뭔가를 금지하는 것은 그것을 원하게 하는 일이다. 뭔가를 우리에게 완전히 내맡기는 것은 그것을 경멸하게 만드는 일이다. 결핍과 풍요는 결국 똑같은 골칫거리가 된다. '너는 너무 많아서 탈, 나는 모자라서 탈(테렌티우스).'"
몽테뉴는 재미있는 견해를 피력한다. 불륜 같은 것들이 인기 있는 이유는 금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릴 수 없도록 금지된 것이 오히려 극복하는 재미를 낳는다. 불륜을 저지르면서 굳이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이 그 방증이다.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허용된 것은 매력이 없다. 금지가 욕망을 불붙게 한다." 한 고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벌은 악덕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자극한다. 벌은 선행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선행은 이성과 훈육의 작품이다. 벌은 단지 나쁜 짓을 하면서 들키지 않으려 조심하게 할 뿐이다."
몽테뉴의 불륜론은 진지하게 다루고 싶지 않다.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청개구리처럼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은 많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청개구리는 왜 이런 이미지가 박혔을까?) 아이들은 진지한 숙고 끝에 행동하지 않는다. 재미있어 보이는 쪽으로 본능적으로 향할 뿐이다. 이럴 때 오히려 금기가 나침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아이들은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 금지를 풀면 시시비비를 가릴 능력 잃을 텐데, 그렇다고 금지를 유지하면 시시비비를 알아도 달려들게 만드니. 어려운 문제다.
한편 몽테뉴는 자신의 집을 누구에게나 열어두었다고 한다. 자신이 귀족이라 해서 자신의 집에 들락날락하는 일에 금기를 씌우지 않은 것이다. 왜? "침략에는 모두가 관심이 있고, 방어는 오로지 부자들만 생각하니까." 그러고 보면 애초에 누구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 집에 '침입'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몽테뉴의 집은 종교 전쟁 동안 무사히 견뎠다고 한다. 다른 집들은 수비를 했기 때문에 파괴됐을지도 모른다. "수비는 공격자에게 욕심과 구실을 제공한다." 놀랍고 재미있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