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74
이번 글은 자아성찰이 짙다. 어떻게 보면 몽테뉴의 자랑 내지는 변명으로 볼 여지도 있겠다. 몽테뉴는 자신의 타고난 천성부터 오만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오만을 부릴 의도조차 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몽테뉴의 솔직한 고백은 좋았지만, 솔직히 이것들은 내 흥미를 끌지 못한다. 몽테뉴가 그런 사람인 것과 별개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몽테뉴가 오만에 관한 좋은 문장들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자신을 성찰하려 한다.
첫 부분에서 몽테뉴는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는 온통 격식일 뿐이다. 겉치레에 휩쓸리다 보니 사안의 실체는 버려둔다." 저번 글 「영광에 관하여」에도 어울리는 문장이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다 보면, 나중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을 포괄한 모습이 아니라 보이는 모습만이 참모습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여기서 오만이 우러나온다. 남들이 내리는 평가가 참모습과 관련이 있는지 살피지 않고 도취되거나, 혹은 남들의 겉모습 또한 남들의 참모습이라고 비약하는 것이다. "오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즉 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것과 남을 충분히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어느 정도 오만의 싹을 갖고 있다. 남들의 호평에 목말라서 스트레스를 받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그 경향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에세」라는 수준 높은 책을 읽고 있음을 보이기 위한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문장보다 내가 굵은 글씨로 인용하는 문장이 갑절 더 값지다. 하지만 내 문장을 계속 만들려 하는 것은 어떻게든 남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과시욕이 빚어내는 헛수고일지도 모른다. 마르시알리스는 "형편없는 시인만큼 자신감 넘치는 사람도 없다."라고 말했는데, 아직은 자신감이 있지 않으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몽테뉴는 겉모습을 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려한 외모를 호평하는데, 그 근거는 이러하다. "육체는 우리 존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육체의 구조와 구성은 올바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주요한 두 부분을 나누어 하나를 다른 하나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자들은 틀렸다. 반대로 그 둘을 다시 결속시키고 합쳐야 한다. 영혼더러 멀리 떨어져 홀로 있으면서 육체를 멸시하고 버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육체와 동맹을 맺고, 육체를 끌어안고, 사랑하고, 보살피고, 통제하고, 충고하고, 육체가 길을 잃으면 바로잡아 다시 데려오고, 요컨대 육체와 결혼해 남편 노릇을 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둘의 행위가 따로따로 다르거나 모순되지 않고, 하나로 합치될 수 있도록 말이다." 건강에 관한 말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문맥 상 이 부분은 용모를 꾸미는 것과 관련이 깊다.
용모야말로 내가 가장 자신 없어하는 분야이다. 내 얼굴 자체가 부끄러워서 남들을 만날 때 호감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한때는 자존감을 높여보려고 일부러 내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해 보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에도 변변찮고 남들도 관심을 전혀 기울이지 않아서 지금은 다른 사진이 내 프로필이다. 살도 많이 쪘다. 이런 자기 비하는 객관적이라 할지라도 정신에 좋지 않다. 나도 잘 안다. 몽테뉴도 "한 인간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거나, 자기가 실제보다 못하다고 여기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판단이란 언제 어디서나 그 특권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용모의 부족은 자기 관리 부족에서 나오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체중만 해도 결국 살을 찌운 것은 본인 책임이니까. 지금은 돌이킬 수 없이 살을 찌운 과거의 나도, 또 그걸 복구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나도 미울 뿐이다.
그러나 내가 몽테뉴 못지않게 자신 있는 것이 있다. 진실성이다. 나는 거짓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말하지 않겠다. 언젠가 내가 정말 불리한 처지에 놓일 때 저지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몽테뉴의 이 말을 믿는다. "진실은 덕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요 기반이다. 진실은 진실 그 자체를 위해 사랑해야 한다." 나는 이 말을 몽테뉴 이전에 조던 피터슨에게서 배웠다. 거짓말을 하면 오히려 내 행동반경을 좁히는 기분이 들었는데, 조던 피터슨의 책을 읽고 솔직하게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한 이후로 적어도 내가 꾸민 거짓말이 나를 자승자박하는 일은 겪지 않았다. 지금 늘어놓고 있는 문장들도 서투를지언정 나의 모습이니, 나는 내가 부끄럽다는 것을 고백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상이 나에 관한 성찰이다. 완전함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지나치게 부족하다. 개선을 위해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리라. 어쩌면 나도 몽테뉴처럼 타고난 기질이 완전함과 너무 동떨어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결론을 내렸을 때는, 몽테뉴의 이 조언에 따르리라. "사건들을 조절할 능력이 없으므로 나 자신을 조절하고, 사건들이 내게 맞지 않으면 나 자신을 사건들에 맞춘다." 자랑스러운 나를 만들 수 없다면, 자랑스럽지 못해도 일단 살아있는 나에 만족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