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더위에는 이야기가 있다

by 러너인

- 등장인물 : 승우(대한민국 러너 작가), 민원(바나나런클럽 러너 동생)

- 시간과 공간 : 2025년 7월 29일(화) 밤, 편의점 앞

(단군이래 최고 폭염이 진행 중인 대한민국. 트랙 위에 구슬땀을 흘리며 달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훈련을 마친 러너들의 단체사진이 보이고 편의점 앞 야외의자로 장면이 바뀐다.)

승우 : (상기된 얼굴로) 오늘 러닝훈련 넘 애썼어.

민원 : 형님도요. 전 얼마 전까지 부상이 있었지만, 평소 보강훈련을 하도 해서 몸이 좋아요. 호흡만 신경 쓰면.

승우 : 난 오늘 발목이 살짝 찌릿해서 가볍게 했어. 뒷조 맨 앞에서 천천히 뛰며 리딩을 했는데 행복했어.

민원 : 맞아요. 페이스 리딩도 해봐야 감이 생겨요.

승우 : 응. 목표 페이스보다 1분 정도 늦추니까 날이 더워도 안 힘들고, 빌드업 신경 쓰니 나도 훈련이 되고 함께 뛰는 분들도 좋아하셔서.

민원 : 그렇죠. 누가 앞에서 끌어주면 덜 힘드니까요.

승우 : 대회 때나 훈련 때 조별 페이스메이커 러너분들의 마음을 살짝 알겠더라. 누군가를 도우려면 실력도 있고 배려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니까. 한 1분 정도 페이스에 여유 있으면 편하게 리딩할 수 있는 것 같아.

민원 : 맞아요. 형님. 리딩의 기쁨을 느끼셨네요.

승우 : 응. 훈련을 마치고 함께 뛰신 분들이 오셔서 덕분에 편하게 잘 뛰었다고 감사인사를 해주시는데 내가 더 고맙더라. 내가 뭘 했다고 싶고, 가끔 이렇게 함께 훈련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고

민원 : 네. 형님도 빨리 집에 가서 쉬세요. 에어컨 틀고 리커버리 하셔야죠.

승우 : 휴. 집에 가도 찜통더위라... 걱정이다.

민원 : 에어컨 트시면 되시잖아요.

승우 : 마루랑 애들 방엔 에어컨이 있는데 내방엔 달랑 선풍기로 버터야 해서. 잘 참는 편인데 요즘은 덥더라.

민원 : 아... 창문형 에어컨이라도 설치하시는 게...

승우 : 어른들 방엔 에어컨을 안 놔서(웃음) 애들은 공부해야 해서 필요한데 어른은 그냥 참으면 된다고 누가 그래서...(웃음)

민원 : 전 보강을 집에서도 많이 하는데, 에어컨 틀어놓고 시원하게 하거든요.

승우 : 난 방과 바깥 온도가 비슷해서, 안에서 보강할 엄두가 안나. 음... 전에 비 많이 올 때 우리 갓 오픈한 실내 러닝 복합체험센터 갔었잖아. 이름이...?

민원 : 런하우스요. 산소 리커버리 장비까지 있던 곳.

승우 : 맞아.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맞으며 쾌적하게 훈련할 수 있는 그 런하우스. 민원이 집이 '런하우스'라면, 내 방은 호수공원에서 우리가 언덕훈련하는 '재미난 밭'이야. 숨 막히고 땀 흘리며 3단 언덕 뛰기 하는 업힐의 성지.

민원 : 헉. 런하우스 vs 재미난 밭. ㅠ 그렇게 어떻게 버텨요. 집에선 좀 편하게 쉬셔야 되는데. 사실 재미난 밭은 뛰어보면 재미나진 않고 언제나 힘들잖아요.(웃음)

승우 : 그래도 난 재미난 방에서 매일 글쓰고 잠자고 살 수 있으니 감사한 것 같아.

민원 : 형님 대단하세요. 이 더위에.

승우 : 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게 있어. 의식같이.

민원 : 그게 뭐예요?

승우 : 눈을 딱 뜨면 밤새 열대야에서 나를 지켜준 선풍기가 보이거든. 꼭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해. "고마워. 밤새 일하느라 고생 많았어. 덕분에 잘 잤어. 너도 잠깐 쉬어야지."하고 잠시동안 선풍기를 끄고 안아주는 거로 하루를 시작해.

민원 : 재미난 밭에 유일한 선풍기. 너무 소중하네요.

승우 : 선풍기라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이 하나가 있어서 힘들지만 버틸 수 있는 것 같아. 항상 누르면 밤새 말없이 묵묵히 나를 위해 일하는 것도 감사하고. 가끔 저 아이도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집에 와서 씻고 여행 유튜버 서재로36님 영상을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 레소코라는 영상. "세상은 선진국으로만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멘트. 그곳의 여성은 살면서 한 번은 말할 수 없는 폭력을 당한다는 말에 울컥해졌다.


더운데 선풍기뿐이라고 투덜댈 때, 세상 어딘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세상은 유리한 사람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 나만큼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처럼 간절하지 않아서가 아닌. 에어컨은 아니라도 나와 타인에게 선풍기 같은 삶이라도 살아보자.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듯 모든 삶에는 이유가 있으니까.


P.S. 방에 에어컨이 없다면 절대로 내 책(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은 읽지 마시길. 책장을 넘기자마자 가슴이 뜨거워질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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