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by 러너인

나는 유난히 글 이름, 제목에 집착한다. 하물며 인스타 sns 글조차도. 김춘수 시인의 '꽃'을 떠올린다면 오버일까. 아무튼 그렇다. 내겐 글의 내용만큼, 아니 그 이상 제목도 중요하다.

좋은 글에 제목이 평범하면 너무 아쉽다. 눈부신 명품백에 로고가 삐뚤빼뚤 새겨진 느낌이랄까. 멋진 사람이 본인 이름이 개똥이 소똥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작가가 자신의 이름이 소중하다면, 짧은 글 하나에도 이름을 최대한 잘 지어주어야 맞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특히 인스타 운동계정에서 흔한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이나 [매일 달리기 00일] 같은 제목을 보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날의 운동, 그날의 달리기가 그 이름을 보면 얼마나 속상할까. 모든 달리기와 숫자 뒤에는 그날의 소중한 이야기가 있다. 조금만 귀 기울인다면, 오늘 글이 어제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텐데...

글 이름을 짓느라 애쓰는 버릇은 꽤 오래된 습관이다. 수년 전 단체필사를 할 때, 다른 분들이 매일 필사 인증글에 '책이름 p00~p00'으로 게시판에 올리는 걸 보곤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그날 필사한 내용에 가장 어울리는 제목을 붙여주기로.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 한니발 군대를 격파하는 역발상의 이야기를 필사하는 날에는 '알프스는 없다'라는 식의 제목을 붙였다. 바나라 런클럽에서 힘든 훈련을 하는 날,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속상한 날 올린 글에는 '달리진 못했지만, 바나나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을 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관심도 없었지만 그저 내가 좋아서 그 글들에 하나씩 나만의 제목을 선물해 주었다. 만일 내가 쓴 글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김춘수 님의 <꽃>처럼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너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하나의 문자에 지나지 않았다.
너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너에게로 가서 글이 되었다.

너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글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단 하나의 이름이 되고 싶다.

나는 글 이름, 제목을 소중히 여긴다. 아무렇게나 대충 툭 던지는 제목이 아닌, 그날의 글에게 부끄럽지 않은 제목을 선물하고 싶다. 좋은 제목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저 그런 날도 있다. 그저 계속해나갈 뿐이다.

어제 백일백장 합평회에 모인 나를 포함한 10명의 작가님들의 글을 모임에 가는 지하철에서 줄을 그으며 읽었다. 그리고 만일 내가 그 글을 쓴 작가라면 어떤 제목을 그 글에 어떤 제목을 지었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님들 글에 나만의 제목을 하나씩 선물해 본다.

1. 허광리 작가님 글 이름
'내 안의 소리' → '내 마음이 들리나요?'
2. 내가 쓴 글 이름
'책 한 권 선물해도 될까요?' → '책 한 권 쯤'
3. 리치온 작가님 글
'길은 하나가 아니다' → '다른 길은 언제나 두렵다'
4. 김미옥 작가님 글 이름
'사춘기 소녀와 갱년기 엄마의 신경전'
→ '사춘기 엄마, 갱년기 소녀'
5. 이영미 작가님 글 이름
'한정판 명품 매력만점그녀 이영미 파이팅'
→ '또다시 망설이고 있는 너에게'
6. 아침햇살 작가님 글 이름
'나이가 주는 위로와 희망'
→ '딱 나이테만큼만 행복할게요'
7. 다우 작가님 글 이름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건강한 것 같아요'
→ '언니, 저도 갓생 살고 싶어요'
8. 배정윤 작가님 글 이름
'작가의 서재에 멀리서 오신 손님들'
→ '작가의 서재로 초대합니다.'
9. 초바샘 작가님 글 이름
'달 같은 사람, 지구 같은 사람'
→ '달 같은 지구, 지구 같은 사람'
10. 민희수 작가님 글 이름
'수영할 결심! Replay'
→ '다시 물속으로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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