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완주한다

by 러너인

"요즘 더워서 달리기는 못하죠?" "계속하고 있어요. 평일 저녁에 훈련나가요. 어제도 70분간 뛰었어요." "헐... 대단하세요."

회사 지인의 질문에 대답하며 함께 훈련하는 분들을 떠올린다. 러닝클래스에 나가면 다들 대단한 분들 뿐이다. 모두가 자기 나름의 페이스로 일상을 달려낸다.

점점 달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속도도 빨라진다. 하지만 날씨는 그대로다. 습도도 여전하다. 풀코스 330조에서 뛰고 있지만, 체중이 늘어서 쉽지 않다. 조를 더 낮추면 편하지만 훈련이 부족해서 최대한 같은 조에서 뛰려고 노력 중이다.

마음은 간사하다. 훈련날 주어진 미션이 평소 자신이 뛰던 페이스 그룹보다 약하면 하나 더 빠른 조에서 뛰고 싶고, 강하면 하나 더 느린 조에서 뛰고 싶다.

체력이나 부상 이슈가 아니라면 조바꿈은 추천하지 않는다. 훈련마다 주어진 미션은 숨은 의미가 있다. 페이스가 평소보다 느리다면 그 뒤에 있을 보강훈련이 강하거나 빌드업으로 몸을 끌어올리려는 계획도 있다.

습도 탓인지 당겨진 페이스 탓인지 자신이 없다. 오늘 우리 조는 세 명뿐. 아담하다. 중간에 한 두 명이 뒤로 빠지면 조가 사라지는 상황이다.

조깅 20분부터 만만치 않다. 시계를 잘못 눌렀는지 자꾸 삑삑 대서 신경이 쓰인다. 조깅 페이스가 생각보다 빠른 것 같다. 괜스레 화장실 생각도 나고 본격적인 훈련 전에 조금 느리게 조바꿈을 할까 생각도 든다.

벌써 힘들다. 화장실 핑계로 열차를 탈출하기도 애매하고 이게 그럴 정도의 훈련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깅이 빠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조깅이 끝났다.

본훈련 50분이 기다린다. 맨 앞에 선 인태님이 페이스 리딩을 잘해주어서 따라서 뛴다. 시간이 안 가는 것 같다. 이렇게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400m 트랙을 돌 때마다 우릴 보고 계신 코치님이 계셔서 도망갈 생각을 저 멀리 달아난다.

차라리 처음부터 더 천천히 뛰는 조로 갈 걸 그랬나. 5:00 페이스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를 보지 말자. 아직 시간이 넘치도록 남았다는 걸 몸은 느낌으로 안다. 마음이 꺾이면 다리는 멈춘다는 것도 안다.

30분이 지났다. 중간에 달리며 물을 마시느라 두 번째에서 맨 뒤로 갔다. 아무 생각 없이 40분쯤 뛰었을까? 덥고 습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 갑자기 맨 앞을 끌어주던 인태님이 옆으로 빠지며 느려진다.

힘드셔서 선두를 바꾸자는 말인가? 아니다.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그만 뛸게요." 확실히 컨디션이 안 좋으신 것 같았다. 두 번째에 있던 분이 리딩을 시작했다. 이젠 그와 나 둘 뿐이다. 이러면 더 도망가긴 어렵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쯤, 다시 코치님 계신 곳을 지난다.

"2분! 좋아요. 계속 유지!" 만일 트랙이 400m가 아니거나 코치님을 자주 만날 수 없는 긴 거리라면 중간에 타협할 기회가 많겠지만, 400m 트랙은 돌고 나면 코치님이 계셔서 정신을 차리게 된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마음을 다독인다. 내가 지금 빠지면 결국 앞에 계신 분 혼자 달려야 하고 나도 혼자 뛰어야 해서 오늘 훈련은 제대로 되지 않을 테니 버텨야 한다고.

최대한 코호흡을 해본다. 몸이 힘드니 그냥 앞의 분만 따라가며 버틴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정신이 든다. 그분도 힘드시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묻는다.

"너무 오래 리딩하셔서 힘드시죠?" 그가 답한다. "제가 조금 더 해볼게요. 마지막 10분만 끌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70분간 뛰면서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는 조깅할 때, 두 번째는 30~40분쯤 열차가 흔들릴 때였다. 탑승한 인태님이 하차할 때 나도 따라서 하차하고 싶었다. 강렬한 하차의 유혹.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던 이유는 중간에서 달리다가 선두가 사라지자 힘차게 앞으로 뛰어나간 앞선 러너의 투혼이었다. 그의 흔들림 없는 전진에 감탄했다. 이제 우리 둘 뿐인데 저분이 저렇게 힘차게 뛰시니 나약한 생각은 접자고. 그때가 가장 큰 고비였다.

페이스메이커의 힘. 누군가 앞에 있다는 것 만으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된다. 페이스메이커도 뒤따르는 이가 있어야 존재한다. 힘든 순간, 서로가 서로의 페이스메이커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결국 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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