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부하며 살기로 했다

by 러너인

"처음부터 걷기를 계획한다면 시작하기 않기를 바랍니다.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기간, 권은주>

아침에 달리다가 아는 러너를 만나 잠시 이야기 나눴다. 그는 기술 관련 강의나 책을 쓰고 싶어서 회사에서 팀원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갖춰지면 강의 플랫폼에 영상을 찍어서 올리려고 한다고.


어제 책과강연 백일백장 합평회에서 어느 작가님 말씀이 생각났다. "죽기 전에 책 한 권내는 게 꿈이에요. 아직 남들에게 보이기엔 글이 부족해서 비공개로 sns에 올리고 있어요. 어느 정도 잘 써지면 그때부터 공개하려고요."


내가 말했다. "저는 브런치(글 쓰는 플랫폼)에 세 번이나 떨어지고 네 번째 붙었어요. 그런 저도 글을 쓰고 책을 냈으니 얼마든지 해내실 거예요." 그가 말했다. "전 한 번에 브런치에 붙었어요." 그는 읽기만큼 많이 쓰지 않아서 최근 쓰는 연습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작가님께 하나 부탁드릴게요. 부끄러워서 비공개로 쓰신다고 하셨는데 공개글로 쓰시면 좋겠어요.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모든 성취는 부끄러운 과정을 거치니까요. 보이는 글을 써야 발전이 있고 더 나아지더라고요. 전 감사일기 세 줄, 운동 인증글로 시작했어요. 지금 보면 부끄러운 글도 있지만, 그 글이 없었다면 제 책도 없었을 테니까요. 무조건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쓰시기를 추천해요."

그분이 웃으며 말했다. "죽기 전에 책을 내고 싶은데... 제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알죠? 사람의 운명은 모르는데." 다들 웃었지만 나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왜 지금 도전을 미룰까?"


그 이야기를 동료 러너에게 해주며 부탁드렸다.

"전 선생님이 지금 팀원들에게 하는 강의를 지금부터 유튜브에 올리셨으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 갖춰지고 한다는 말보단 어설퍼도 지금 당장 하셨으면 좋겠어요. 비공개로 갈고닦은 뒤 짜잔 멋있지? 하고 내놓는 건 물론 멋있지만 지금 당장 하시면 어떨까요? 저는 우리가 달리는 이유가 이런 작고 큰 도전을 망설이지 말고 그냥 달려볼 용기를 얻기 때문이라고 믿어요. 웃기고 서툴러도 그 콘텐츠의 가치를 누군가를 알아보고 배울 거예요. 죽기 전에 책 한 권 내겠다는 것.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아나요? 그건 안 내겠다는 말처럼 들려요. 지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야기 제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합평회 때 작가님께 들은 부아 c님이 리딩하는 기수제 '더 퍼스트' 3기 모집소식을 들었다. 한 달에 소정의 비용이 발생하는 자기 계발 모임. 돈을 낸다는 말에 시큰둥한 마음이었다가 내가 아는 스레드 친구, 인스타 친구 작가님들도 1기, 2기에 있었다는 걸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돈도 없지만 글쓰기로 돈을 벌기 위해 애쓰고 돈을 밝히는 데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책을 내면 되는 거 아닌가? 인플루언서가 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건 내 길과 맞지 않다고 여겼다. 마치 돈을 좋아하면서도 겉으론 고상한 척 돈에 초연한 척 그런 글을 쓰고 그런 척 사는 게 올바른 삶이고 작가라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게 내가 가진 돈에 관한 심리적 기제였다.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부자아빠. 블로그로 돈 벌기... 서로 책 써서 사주고 띄워주는 책 쓰기 강의처럼 교주와 신도들처럼 자기들만의 세상이 아닐까 하는 편견이 있었다. 그냥 공짜라면 한 번 해볼 순 있지만, 6개월간 얼마씩 비용을 내고 같이 시작한다는 말에 마음을 접었다. 출간작가이고 내 나름으로 모든 주어진 도전을 소화해내고 있다는 자존심도 발목을 잡았다.


백일백장에서 어느 작가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을 정말 잘하는데 아부를 안 해서 혼자만 승진이 안되고 있었는데 눈 딱 감고 작년부터 아부를 했더니 바로 승진이 되었다고. 그 말을 듣고 씁쓸한 마음도 들었지만 느끼는 게 있었다. "그래, 아부 좀 하면 어때? 네가 싫어하고 애써 피해오던 걸 해보면 어때?"


"네가 왜 부아 c 같은 사람을 애써 가볍게 여기고 피하려고 했는지 아니? 글쓰기로 강의로 돈을 벌고 인플루언서가 된 걸 그냥 시기하고 배 아파서 그런 거야. 고상한 척 하지만 그 마음 밑바닥엔 그런 부러움이 있고 그래서 피하는 거라고. 알아?"


"승우야. 넌 너의 발전을 가로막는 작은 너,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안절부절못할게 아니라, 배가 아파도 아픈 배라도 움켜쥐고 달려야 하지 않겠니? 그게 돈 버는 방법이든 팔로워를 늘리는 후킹이든 무엇이든 너보다 그 방면에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라면 그가 선생님이야. 그 노하우가 누군가를 해하는 게 아니라면 큰 절이라도 하고 아부라도 해서 배우고 진짜 네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니?"


"승우야. 너 3월에 달리기 책 냈잖아. 솔직히 너 책이 후지니? 아니잖아. 근데 왜 스테디셀러로 가지 못하고 있는데.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서 그런 거야. 세상이 그 책의 존재를 알려면 SNS에 유의미한 숫자의 팬들이 있어야 해. 네가 브아c의 1/10만큼의 팬이 있었다면 네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더 많은 분들께 닿아서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야. 너의 가치, 네가 지키려는 본질을 버리라는 게 아니잖아. 네가 가진 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그 루트를 확보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 그걸 배우라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지인에게 해준 충고를 다시 나로 바꿔 생각하며 질문을 던졌다. 한 달에 5만 원이 아까워서 그 도전을 하지 않는 건 아쉬웠다. 어찌 보면 내가 가진 건 굴하지 않는 도전, 끝없는 투지와 반복, 글을 쉽게 쓰는 능력, 내가 배운 걸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어쩌면 모든 갈등의 원인이 경제적인 부분에서 시작된 것일 수 있으니. 그동안 애써 눈 맞추기 싫어했던 그런 분야가 이번 브아c님의 더 퍼스트 기수모집이 아닐까. 왜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기다리지 말고 지금 하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온 기회는 가볍게 여기고 있을까.


집에 와서 책장에 놓은 권은주 감독님의 책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을 펼쳤다. 항상 따뜻하게 러너들을 위로해 주는 감독님의 글 중 조금 날카로운 제목의 글이 눈에 띄었다. '처음부터 걷기를 계획한다면 시작하지 말기를'. 대회 당일에 걸어도 된다는 건 준비를 모두 마친 다음 그날의 컨디션에 따르라는 말이지, 처음부터 걷겠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처음부터 걷기를 계획하면서 마라톤을 시작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준비하는 동안 정성도 중요하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는 감독님 말씀.


눈시울이 붉어졌다. 꾸준하게 지속할 수 있는 마음가짐. 완주하기 위한 노력,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는 최선. 나는 내 책, 아니 내 삶을 더욱 가치 있게 살기 위해 지금 조금 비굴해질 수 있는가? 나를 더 나아지기 위해 조금 더 아부할 수 있는가? 돈을 쓰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 수백 명과 함께 도전하는 시스템에서 서로 응원하며 뛸 수는 없는가? 돈이 든다는 핑계, 그런 건 해봐야 결국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만 좋은 거라는 뻔한 이유, 그런 걸로 돈 벌었으면 다 부자가 되지 않았겠냐는 의심. 잘된 누군가에게 배 아픈 옹졸함을 넘어, 도전을 항상 두려워하는 작은 나를 넘어 달리기로 했다.


부아 c님을 스레드와 블로그에서 팔로우했다. 바로 링크를 찾아 더 퍼스트 3기에 등록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내가 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하나씩 초심자의 눈으로 배우고 따라 하고 박수를 보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부자가 되든 안되든 내 안의 작은 나부터 넘어서기로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맞듯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