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순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줄임말이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실화가 바탕이다.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열악한 환경과 올림픽 결승전에서의 투혼, 그리고 선수들의 진한 우정과 감동을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어제 유난히 마라톤 대회가 많았다. 나 역시 선사마라톤 하프가 있어서 바나나 전우 두 명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빗소리가 굵어졌다. 승패는 병가지상사. 장수가 전쟁에 나가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듯, 비를 맞으며 뛰는 것은 대회에서 일상적인 일이다.
우리 중 비가 두려운 러너는 없다. 하지만 이번 주말에 최장거리 훈련주가 예정되어 있어서 컨디션 관리가 필요하다. 즐겁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뛰고 싶은 마음도 있고 굳이 춘마나 제마 같은 메이저대회도 아닌데 무리하다가 감기에 걸리거나 컨디션이 떨어질까 걱정도 된다.
코치님은 각자 선택이니 각자 컨디션에 맞게 달리라고 하셨다.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다. 좁은 주로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달리기보다 이후의 메인 대회를 위해 몸을 사리기로 했다. 대회에 뛸 수 있는 복장 그대로 입은 채 차를 돌려 미르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행사준비로 분주하다. 차들이 올라와 있고 용인의 맛집들이 가판을 이루고 죽 늘어서 있다. 운동장 안에서는 행사가 막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숙제는 25km. 글쓰기에 진심을 쏟아서 그런지 오히려 9월 마일리지가 8월보다 못하다. 저번 주 장거리 모의고사 때 하프만 뛰고 중간에 멈춘 것도 예전엔 상상도 못한 일이다.
모의고사를 잘 봐야 자신감을 가지고 본고사에 임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오늘 25km라도 제대로 뛸 수 있을까. 페이스를 당기는 건 둘째치고 다시 버티는 훈련부터 해야 할 상황이니까. 서브 3 주자인 민원이와 요즘 회복 중인 영균님은 표정이 여유롭다. 오늘은 각자 페이스로 뛰니 누군가와 발을 맞추거나 빠른 리딩에 퍼졌다는 등의 변명도 필요 없다. 그냥 나의 달리기를 하자.
운동장 둘레길은 지붕이 있어서 비를 피해서 달릴 수 있다. 비가 오지 않는 곳을 달리며 바로 옆에서 폭포 같은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튕기는 빗방울을 맞고 내리는 비를 보면서 달릴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마치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길을 다니는 건 고역이지만, 카페에서 맛있는 차를 후후 마시며 창밖에 내리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을 바라보는 게 행복이듯.
5km, 10km 거리가 늘어날수록 몸은 더 나아졌다. 달리기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800미터 한 바퀴를 돌다 보면 지붕이 없이 열린 구간이 있어서 비를 잠시 맞아야 했다. 그것조차 좋았다. 러너스 하이 구간처럼. 나는 그 구간을 러너스 샤워 구간이라 부르며 빙긋 웃었다. 지친 몸과 나약한 정신을 씻어주는 그 짧은 구간.
한참을 달리는데 본행사가 시작된 듯 초청가수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달리는 방향에서 왼쪽이 메인무대이고 오른쪽이 비가 쏟아지는 바깥이다. Il Mondo (일 몬도)가 들려왔다. "세상은 끝없이 돌고,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이 반복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탈리아의 명곡으로, 영화 '어바웃 타임'의 OST로 유명하다.
키를 높여 부르는 노래의 하이라이트 순간, 나도 모르게 가사를 중얼거렸다. 오른쪽 귀에는 빗소리가 시원하게 닿았다. 4d영화관처럼 바닥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있고 오른쪽 빗방울이 몸에 살짝 튀기기도 하고 눈에는 쏟아지는 비가 보인다. 거기에 규칙적으로 들리는 내 발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이 모든 공간이 하나가 된다. 찔끔 눈물이 났다. 이게 달리기지.
비를 맞으며 달리는 우중런만이 최고의 맛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비를 맞지 않고 빗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달리기도 운치 있다는 걸 배웠다. 우연히 들리는 음악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20km쯤 급수를 하려고 잠시 멈춰서 물을 들이켜다가 바로 눈앞에 쏟아져 내리는 빗물과 눈이 마주쳤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오늘이 우. 생. 달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달리기.
러너에게 장소는 중요치 않다.
대회를 뛰어도 좋고 뛰지 않아도 좋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달리느냐가
그곳을 대회장으로 만들기도 하고 평범한 장소로 만들기도 한다.
어제 쏟아지는 빗속을 달린 당신들과 그 비를 감상하며 어우러진 모두를 응원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달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