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눈이 끌렸다. “안경 쇼핑, 내게 주는 선물" 방송인 홍진경의 기사였다. 마음에 드는 안경을 산 그녀가 말했다.
“그냥 진짜 내가 나한테 선물을 한다면 뭘 할까 하다가... 안경 선물이 좋을 것 같았어요. 어두운 데서 자주 휴대폰을 보니까 점점 눈이 나빠지는 것 같아서...”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실 내가 나를 위해,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진짜 선물은 화려하고 값비싼 것이 아니었다. 그가 고른 ‘안경 하나’처럼.
막연히 갖고 싶은 거창한 선물이 아닌, 작고 소박하지만 내게 꼭 필요하고 삶을 가치 있게 해 줄 선물. 반짝이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삶을 아름답게 비춰줄 작고 소중한 선물 하나.
사람들은 종종 고생한 자신을 위해 보상하듯 쇼핑을 한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듯 고가의 물건을 지르며 이 정도는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정말 그 선물이 필요했을까? 자신에게 침침해진 눈을 조금 더 밝게 비출 안경 하나를 선물했다는 그녀의 말이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와닿는다.
러너로서, 진짜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선물은 뭘까?
평소 갖고 싶었던 러닝화? 접수 경쟁이 치열한 메이저 마라톤 대회의 얼리버드 티켓?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오늘 2024년 마지막 훈련에서 그 답을 찾았다.
호수공원에서 파틀렉 훈련이 있었다. 스웨덴어로 ‘스피드 놀이’를 뜻하는 파틀렉(Fartlek)은 지형에 따라 속도를 바꿔가며 달리는 훈련이다.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 덕분에 강도가 낮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알찬 언덕 코스는 그대로다. 80분 동안 쉼 없이 언덕 구간을 달린다. 평소보다 몸이 무거워서 페이스를 6분으로 조금 속도를 늦췄다.
코스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15~20분. 천천히 달리면 네 바퀴, 조금 빠르면 다섯 바퀴를 돌게 된다. 1시간쯤 달리니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원래 페이스인 5분 30초로 달리는 것은 무리가 없었지만, 속도를 올릴 때마다 숨이 차기 시작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앞사람을 보내드린 후, 한 분과 같이 짝을 이루어 달렸다. 평소 운동을 잘 안 한다고 말씀하시던 그분은 힘들어 보이면서도 묵묵히 해낸다.
언덕 구간이 눈앞에 나타난다. 파이팅을 외치며 속도를 올린다. ‘이번이 오늘 마지막 언덕이기를’ 가쁜 숨을 고른다. 시계를 보니 남은 시간은 약 10분, 시간이 애매하다.
천천히 속도를 늦추거나 동그란 트랙을 돌면서 시간을 채운다면, 마지막 언덕 1회전을 피할 수 있다. 피하고 싶다. 혼자였다면 언덕을 건너뛰었을지 모른다.
함께 달리니 다시 힘이 솟는다. “우리, 시간이 좀 애매하지만 마지막 한 바퀴만 언덕 코스 한번 더 가볼까요?”
"좋습니다!" 약해지려던 마음을 붙들고 다시 언덕을 향해 달린다. 저 멀리 언덕이 나를 내려다본다. 지지 않고 나도 그를 똑바로 쏘아본다.
“자! 갑시다. 파이팅!”
또 한 번 내 안에서 뜨거운 용기 하나를 끄집어낸다. ‘이게 바로 진짜 나를 위한 선물이구나!’
러너로서 진짜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선물은 다름 아닌 바로 ‘순간의 용기, 한 번의 질주’였다. 머리를 감싸던 바라클라바를 벗어던지고, 산발이 된 머리로 언덕을 뛰어오른다. ‘순간 페이스 3분 49초’. 짧고 높은 언덕을 평지인 듯 온 힘을 짜내어 달린다.
그 선물은 값비싼 러닝화나 눈에 띄는 러닝용품이 아니었다. 피하고 싶은 마음 사이로 끄집어낸 ‘한 줌의 용기’였다.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어도, 가슴에 새겨진 선물이다.
인상을 쓰고 남은 힘을 쥐어짜며 나머지 구간을 달린다. 마치 이번이 이 세상 마지막 달리기인 것처럼. 다리는 터질 듯했고 숨은 가빴지만, 얼굴은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났다.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승우 님. 진짜 내가 나에게 선물을 한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저는요. ‘언덕 질주 한 번 더’를 저에게 선물하려고요”
“네? 언덕 질주요? 왜 그 힘든 걸... 그게 왜 선물이죠?”
“그냥요. 내가 나한테 해주는 진짜 선물... 눈 돌리면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가슴에 새기고 싶어요. 두려운 순간마다 고개를 들고 언덕을 똑바로 바라보며 달릴 용기, 그런 용기 하나쯤은 스스로에게 꼭 주고 싶어요.”
2024년 마지막 러닝훈련에서 나는 내게 선물을 주었다. 가장 빛나는 선물, 이 악물고 끝까지 해낸 언덕 질주 한 번. 끝까지 달린 마지막 한 걸음. "'진짜 나를 위한 선물은 바로 이 한 줌의 용기 아닐까?"
작고 소박한 안경이 그녀의 삶을 밝힌 것처럼, 오늘도 언덕 질주 하나가 선물처럼 내 삶을 비춘다. SNS에 자랑할 만큼 폼나고 멋지진 않지만, 내가 나를 위해 주는 진짜 선물. ‘언덕 질주 한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