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면 될 것 같으니까. 나아질 것 같아서)
1주 전, 눈물을 쏟으며 완주한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오늘 바나나 토요일반 장거리 훈련이 있다. 시간은 140분, 코스도 똑같다.
5분 30초 페이스 조, 저번 주에 뒤로 처지느라 처음에만 같이 달렸던 은화님 옆에 선다. 저번엔 뛰다가 중간에 내가 화장실에 갔다고만 알고 계셔서 저번 주 상황을 말해주었다.
"저 일주일 전 그날, 달린 지 2시간쯤 되었을 때, 체력 고갈로 언덕 코스에서 버티느라 울면서 달렸어요. 코치님, 매니저님 뵙기 민망했지만 눈물이 쏟아지는데 방법이 없더라고요. 우여곡절 끝에 2시간 20분 다 채웠어요."
그녀가 묻는다. "그런데 그때 왜 멈추지 않으셨어요? 거기서 멈출 수도 있었잖아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답했다." "멘털훈련이니까요. 체력이 아닌 멘털로 버티는 것도 훈련이니. 부상이 아니고 힘이 없는 거라 버텼어요."
오늘은 무사히 2시간 20분 시간주를 마쳤다. 집에 오는 길에 그 질문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그런데 그때 왜 멈추지 않으셨어요? 거기서 멈출 수도 있었잖아요?"
그가 맞다. 메이저 마라톤 대회도 아닌데, 왜 나는 그날 울면서까지 기어이 장거리를 끝까지 달렸을까? 그저 멘털을 강하게 훈련하고 싶어서? 뭔가 속 시원한 대답은 아니다.
그 이유가 나도 궁금하다. 왜 그때 나는 바로 멈추지 않았을까. 울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렸을까. 그 순간의 내 마음을 어떻게 그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후 5시, 서울숲에서 요조 님 북토크 모임을 예약했다. 책 모임 후 1주일 만에 다시 뵙는 작가님. 생각해 보니 저번 주 아침에 울면서 뛰고 오후에 신촌 책모임에 다녀왔다. 한 주 지난 오늘 똑같은 장소, 거리를 아침에 뛰고 오후에 북토크에 가는 중이다.
삶의 동시성. 달리기, 눈물, 웃음. 완주. 책. 글쓰기. 모임. 그리고 작가님.
지하철에서 요조 님이 쓴 책 <만지고 싶은 기분>을 읽었다. 한편씩 읽으면서 따뜻해졌다. 책 중간쯤 위치한 에피소드 '책 읽는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를 만났다. 놀랍게도 책 내용에서 그날 내가 울면서까지 달린 숨은 이유와 감정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책을 오래 읽을 때면 유독 눈이 금방 피곤해지던 요조 님이 안경가게에서 시력검사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안경을 쓴 안경점 직원이 말한다.
"저처럼 눈이 아예 나빠버리면요. 시력에 의존하던 근육들이 잘 보려고 노력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요. 그냥 손 놓고 포기한 거죠. 우린 글렀어, 하면서요. 그래서 사실 눈이 피로할 일은 없다고 봐야 해요. 그런데 손님처럼 애매하고 복잡하게 눈이 안 좋은 경우에는 근육들이 포기하지 않아요. 또렷하게 보려고 계속 노력하는 거예요. 노력하면 될 것 같으니까요."
정말 그렇다. 아예 나빠버리면, 그것에 의존하던 근육들은 잘해보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냥 망했다며 손을 놓고 포기해 버린다. 그래서 애쓰고 노력하느라 피곤할 일이 없다.
하지만 그날의 달리기처럼, 애매하고 복잡하게 안 좋은 경우에는 완주에 의존하던 근육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달려 보려고 달려 보려고 계속 노력한다. 노력하면 될 것 같으니까.
삶도 그렇지 않을까?
아예 나빠버리면, 삶에 의존하던 근육들이 잘해보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냥 손을 놓고 포기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며. 나아지려 애쓰고 노력하느라 피곤할 일이 없다.
나 역시 달리고 쓰면서 더 나아지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계속 노력하게 된다. 노력하면 될 것 같으니까. 정말로 될 것 같으니까. 달리기와 쓰기에 의존하던 근육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책 읽는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요조 님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지성인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력이 나빠져서 기능성 안경을 써야 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시력 근육들이 포기하지 않고 또렷하게 보려고 계속 노력한다고, '노력하면 될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
달리는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고작 4년 차 늦된 러너인 나로선 빨라지는 건 알 수 없지만, 마음근육들이 색안경을 벗고 나 자신과 세상을 더 선명히 보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노력하면 될 것 같아서. 나아질 것 같아서.
"승우님, 그런데 그때 왜 멈추지 않으셨어요?"
"노력하면 될 것 같아서요. 울면서라도 노력하면 완주할 것 같아서요. 그게 멈추지 않은 이유 같아요. 노력하면 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