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하고 간절했던 그날의 나에게

by 러너인

2024년 11월, 지난 3년간의 재정 지원사업을 마무리하고, 상급기관에 보고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났다.


3년 전, 모호한 지침이 있어 메일로 문의 후 답변을 받아 진행했던 일이라 안심했는데, 새로 바뀐 담당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그때 받아둔 답변조차 보기에 따라서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새로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차갑기만 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 한동안 멍해졌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억 원의 지원금을 환수당하고, 새로운 사업비 감소와 추가로 행정제재까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하늘이 노랗다. 이 일은 잘못되면 수습이 불가능하다. 팀원들과 의논한다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일단 부서장에게 보고는 드렸지만, 결국 답변의 무게는 나 홀로 감당해야 했다.


내 손에 있는 무기는 3년 전 받은 애매한 답변 메일 하나뿐. 답변서와 증빙자료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기로 했다.


며칠 동안 밤새며 자료를 작성했다.


이런 중요사안은 보통 답변 검토 후 결과통보와 함께 이의신청 기간이 주어진다. 그 이의신청서를 미리 준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씩 자료를 준비했다. 혹여 일이 잘못되어, 내가 도움받고 지내온 이 조직에 피해를 주지는 않겠다는 마음 하나로.


‘사람으로서 할 일은 다했다.’ 자료를 제출하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 어제 화요일 아침에 결과가 나왔다.


인정받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절실하게 소명한 부분이 일부 받아들여져 이상 없이 마무리되었다는 통보였다. 그때 전화로 쏘아붙이던 담당자가 "제출자료는 잘 확인했다"는 말을 했다는 것도 전해 들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와 하늘만 아는 간절함이 있다.


밤새 자료를 준비하며 행간에 절실함과 정성을 담은 시간들. 타는 목마름으로 결과를 기다리며 보냈던 하얀 밤들. 떨리는 마음으로 공문을 열던 간절한 날들이 있다.


벅찬 마음으로 퇴근하자마자 바나나런클럽 훈련장소로 달린다.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을까 회사에서 레깅스로 갈아입었다. 회사 지인이 "오, 레깅스?"라며 눈이 커진다. 신경 쓰지 않고 달려 나간다. 늦지 않게 가는 게 중요할 뿐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트랙에 도착했다. 몹시도 그리웠던 형석님, 수영님, 순철님, 민원님, 인태님, 호진 님, 현욱님, 진님, 은송님, 윤성님, 태홍님, 경진님, 석우님, 회장님... 소중한 목요일반 바나나런클럽 러너분들과 연진 코치님, 써니 매니저님을 다시 만날 수 있어 기뻤다.


호흡보다 간절함이 더 필요한 날이 있다.


20km 지속주 훈련. 대회 페이스인 5:00으로 페이스를 맞춘다. 서로 2km마다 선두를 바꿔가며 달리니 금세 시간이 흘렀다. 뛰다가 조금 힘들 땐 "내 차례를 생각하며 버티자"라고 다짐했다. 리딩해주신 고마운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내 몫을 끝까지 해내도록 잘 버티자고 나를 토닥였다.


착착착. 발소리가 기차처럼 바람을 내며 지나가고, 트랙 위의 불이 촛불처럼 꺼지며 어둠이 트랙을 감싼다. 광활한 우주를 달리는 은하철도 999처럼 330조 열차는 어둠을 뚫고 조용히 트랙을 달린다.


나의 달리기에도 그런 애틋함과 간절함이 있다.


항상 여유롭고 대충 달려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닌,

진지하고 간절하게 뛰어야 가까스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나의 달리기, 하지만 나는 그런 나의 달리기가 좋다.


일하고 달리며 사람의 일을 다하는 내가 되고 싶다. 못 마시는 술 한잔이 떠오를 만큼 간절한 날이 있다. 지극히 정성을 다한 나를 꼭 안아주고 싶은 날이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하늘과 나만 아는 간절함이 있다. 나의 달리기에도, 그런 애틋함과 간절함이 있다. 작은 일 하나에도, 하늘을 감동시키는 내가 되려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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