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마다 늘 하트를 눌러주시는 분이 있다. 시를 쓰시는 주연 작가님. 고마운 마음에 댓글을 남겼다. "부족한 글에 매번 공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분이 이렇게 답했다. "제가 직접 글을 써보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너무 소중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시간 내서 열심히 읽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가님 글,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한참을 그 댓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름대로 댓글을 정성껏 달고, 공감을 표현하려 애써왔지만, 글 쓰는 사람들이 모인 브런치라는 공간에서는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가볍게 하트도 누르고 댓글도 남겼지만, 여기서는 왠지 모르게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해 왔다.
이유가 뭘까. 문득 젊은 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의 나를 떠올린다. 마치 책을 전부 사야 하는 사람처럼, 한 권을 고르는 데도 온 힘을 썼다. 아이가 볼 책을 고를 때는 더 신중했다. 어느 날은 14권을 빌리는 데 1시간 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어쩌면 브런치에서도 나는 같은 마음이었을까. 마음이 정말 움직일 때만 하트를 눌렀고, 내 글에 공감해 준 분들의 글이 울림이 있어야만 구독을 눌렀다.
그분의 댓글을 읽고 부끄러워졌다.
그까짓 하트 하나,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 굳이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듯 그렇게 신중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날, 내 글에 하트를 남겨주신 분들을 하나하나 팔로우했다. 그리고 바빠도 그분들의 소중한 글이 올라오면 달려가서 공감부터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글에 하트를 누르기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처음에는 하트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금지된 레깅스를 입는 것처럼 어색하고 낯설었다. 하트는 연인들끼리나 쓰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조금 발랄한 감성을 지닌 한 분과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됐다. 그분과는 자주 문자와 톡을 주고받았는데, 그는 대화할 때마다 글의 끝에 ♡를 붙였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이런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사람을 처음 봤으니까. 게다가 이성이었으니 더 그랬다.
'뭐지, 이분? 좀 이상한 사람인가…' 그러다 어느 날, 그분의 삶과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분은 삶 자체가 밝게 빛나는 사람이구나.’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하트 하나하나가 진심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하트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의 답글에 ♡를 남겼다.
가족도, 연인도 아닌 누군가에게 처음 보내는 하트. 그 계기로 나는 딸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 건네고, 하트도 스스럼없이 보내는 아빠가 되었다. 이제는 인스타그램이든 어디든, 남자든 여자든,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순간이면 망설이지 않고 ♡를 남기는 사람이 되었다.
글 쓰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가 직접 글을 써보니, 하트 하나가 너무 소중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시간 내서 열심히 읽고 공감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의 소중한 글,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니, 충분히 차고 넘칩니다.♡“
눈이 내렸다. 오늘은 바나나 러닝클래스 훈련이 있는 날이다. 퇴근 후 트랙으로 향한다. 두 분 코치님이 트랙의 눈을 치우고 수업을 준비하고 계신다. 감사한 마음이 올라온다. 안전을 위해 지속주 훈련이 조깅으로 대체되고 보강훈련을 했다. 새로운 장비로 짝을 이뤄 달리는 동작은 힘들지만 새로웠다.
보강이 끝난 후, 천천히 1시간을 달렸다. 매니저님 일정으로 일일 사진작가가 된 코치님의 열정적인 포토에 뭉클했다. 감사한 마음에 손 하트를 보내고, 단체사진을 찍을 때에도 또 한 번 하트를 만들었다.
달리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가 직접 달리기를 해보니, 응원 하나가 너무 소중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시간 내서 열심히 달리고 응원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의 소중한 달리기,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니, 충분히 차고 넘칩니다.♡“
어쩌면 우리는 마음을 아낀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닫아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트 하나, 팔로우 하나, 응원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낼 힘이 될지도 모르니까.
첫 하트를 누르고, 댓글에 ♡를 남기고, 두 손으로 하트를 그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마치, 처음 달리기 시작할 때처럼.
그래서 나는 기꺼이 헤픈 사람이 되기로 했다.
당신도 하트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길.
그리고 그 계기가, 기꺼이 헤픈 나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