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교수님 강연 중 한마디 말에 마음이 닿았다.
"누구나 자기만의 심리적 소도가 필요하다."
강의 내용을 인용해 본다.
"소도는 역사시간에 배웠듯 삼한시대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소도는 어떤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잡을 수 없는 곳이다. 숨을 수 있고 안전한 공간. 물리적인 요소가 아닌 심리적 소도가 꼭 필요하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나를 돌보고 나를 위로하는 나만의 방법.
이런 공간이 있어야 내가 숨을 공간이 있고, 편안한 해소공간이 있어야 내가 나에게도 안전한 대상이 될 수 있고, 타인에게도 안전한 대상이 될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지치고 쓰러질 때도 와서 풀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나는 그곳을 위로장소라 부른다. 너무 힘들고 피곤할 때 집 근처 24시간 카페에 간다."
나의 심리적 소도는 어디일까?
나의 소도는 두 가지. 달리기와 글쓰기.
외롭고 힘들 때 달리기에 더 깊이 빠졌다. 숨차고 땀이 흐를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작아진 자아가 놀이공원 헬륨풍선처럼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달리다가 문득 이게 도피처가 아닐까. 내가 달리기에 숨고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한 적 있다. 도피처가 되면 안 된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행복은 주관적이고 또한 객관적이다.
누군가는 행복 속에서 그 행복을 키우는 도구로 달리고,
누군가는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고 치유하기 위해 달린다.
누군가의 달리기를 부러워한 적도 있다.
하지만 모든 달리기에는 정답은 없다.
누군가에겐 나처럼 달리기가 심리적, 물리적 소도가 됨을 안다. 내게 달리기가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니까.
달리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에게는 달리기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저 취미일 뿐이다.
달려야만 행복한 사람에겐 달리기는 소도이다.
자신을 나무라고 끝없이 깎아내리는 재판관 같은 목소리에도 주눅 들지 않고, 모든 죄를 사해주는 소도.
죽을죄를 짓고 소도를 향해 달려오는 삼한시대 누군가를 떠올린다. 가장 심한 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죽을죄를 진 누군가가 죽을힘을 다해 마치 피니시라인인 듯 소도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오는 상상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잡으러 뒤쫓는다. 그는 전력질주로 가까스로 소도 안으로 들어와서 기절하듯 바닥에 널브러진다. 이젠 살았다. 그는 안전하다.
달리기라는 소도.
소도가 필요 없는 삶도 있다. 나는 소도가 필요하다.
러닝화 하나 거친 숨 펜 하나만 있으면 그곳이 소도가 된다. 어디든 달리고 쓰는 그곳이 나만의 소도이다.
오늘도 새벽을 달린다.
두 발이 닿는 곳마다, 나만의 소도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