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마음도 분리수거되나요

by 러너인

분리수거를 하던 그날 새벽을 떠올린다.
마음을 닫은 관계가 더욱 차갑게 느껴지던 날. 분리수거를 담당하던 나는 어느 때처럼 집안에 모아놓은 재활용 쓰레기를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낯익은 물건이 있었다. 웨딩앨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미 서로가 수년간 말없이 거리를 두며 지내고 있음에도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체험하는 것은 가슴 아프다.

그는 마음속에서 나를 지우며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화도 분노도 아닌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깊은 곳에서 올라온 묵직한 감정은 나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런 느낌이 상실감일까. 소중했던 순간들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거리가 되어버린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이렇게 아픈 걸까.

나는 애써 무덤덤하게 다른 재활용 쓰레기와 함께 앨범을 들고 분리수거장에 도착했다. 새벽의 분리수거장은 고요하고 싸늘했다. 분리수거를 마친 내 손엔 앨범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분리수거장에 오는 아무에게나 나의 웨딩사진이 버려지듯 보이는 것은 싫었다.

분리수거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한편에 서서 사진 속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앨범 속 사진들을 한 장씩 꺼내어 조심스레 찢기 시작했다.

사진엔 맑은 날 다양한 포즈의 젊은 시절 앳된 그와 내가 있었다. 식장 사진들도 하나씩 떼어 기억에서 떠나보내기 시작했다. 후일 아이들이 깔깔대며 박장대소하던 폐백 때 그를 업어주었던 사진도. 왜? 무거워?라고 멋쩍게 묻던 그의 부끄러워하던 표정도, 아니라고 둘러대던 나의 당황스러운 미소도 사진과 함께 하나씩 떠나보냈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저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누군가를 선택하고 함께 만들어온 기억이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내 손으로 다시 놓아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깊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앨범을 집어 들어 분리수거함에 놓기까지, 그도 많이 아팠으리라. 깊이 찢겼으리라. 그가 진정으로 치유되길.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치유되길... 자신을 용서하며 사랑하길. 서로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은 사랑하길 바래본다.

가끔은 차가운 마음도 분리수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시 따뜻해질 수 있도록, 남겨진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P.S. 글이 지워져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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