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리를 꽃수레에 담아 건네는 방식. 아름답고 다정한 주먹질. 나는 이 기술에 '꽃수레 권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 이슬아,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
직장인 23년 차. 팀장 11년 차다. 일하다가 다른 팀과 의견이 충돌할 때가 있다. 팀원일 때는 오히려 쉬웠다. 내가 야근하며 더 일하면 되니까.
팀장은 다르다. 내가 착한 척하는 만큼 팀원들이 고생한다. 각자하고 있는 일도 많은데, 팀장이 좋은 사람을 흉내 내다가는 분위기가 싸해진다.
얼마 전 일이 터졌다. 대외평가에 대비해서 매년 지난 1년의 업무를 평가항목에 맞게 부서별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는 업무다. 항목별 주관부서가 정해져 있다.
기준이 달라지면서 작년에 나눠져 있던 항목이 합쳐지기도 하고, 한 항목이 새로운 항목으로 나눠지기도 했다. 작년엔 우리 A팀이 주관하던 항목이 분리되어 B팀으로 바뀌었다.
평가부서에 요청하여 해당 항목 작성부서를 B팀으로 조정했다. 하지만 B팀 제출자료엔 그 내용이 없다. 바뀐 사항을 몰라서 그랬거니 하고 평가부서에서 B팀장에게 누락항목 추가 제출 건으로 메일을 보냈다.
B팀장이 우리 부서에 왔다. 자기네 일이 아니라고 메일 보냈다고. 작년과 다른 상황이라 B팀에서 해야 한다고 해도 듣지도 않고 화를 내며 가버린다.
메일을 열었다. 평가담당자와 내게 동시에 보낸 메일. 그 항목은 매년 A팀에서 작성해 왔고 B팀과는 상관없으니 제출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화가 치민다.
기존에 B팀 자료를 취합해서 내느라 진땀을 흘렸던 우리 팀원이 이번부터 조정돼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기 무섭게 이런 일이 벌어지니 분위기가 안 좋다. 팀장으로서 싸워주길 바라는 분위기다. 하~ 현피를 떠야 하나.
그냥 막무가내로 안 한다, 못한다고 아까처럼 나오는데 장사가 없다. 논리도 말발도 안 통할 상황. 가장 나쁜 수는 부서장 보고 후 부서 간 회의를 통해 윗선에서 정리하는 방법이다. 이런 승리는 항상 뒤끝이 있다. 작전상 후퇴해도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든 뒤통수 맞기 쉽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다. B팀장은 왜 저렇게 강하게 반발했을까. 생각해 보니 전년도와 올해 항목이 바뀐 걸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작년에 우리가 주관했는데 올해 자기 팀으로 슬쩍 넘겼다고 오해한 게 아닐까.
전년도 대비 올해 바뀐 사항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요약 비교표를 만들어서 답장을 보냈다. 전년도에도 B팀에서 자료를 받아서 우리가 제출해서 B팀에서 자료를 작성한 적이 없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신자에 B팀장만 넣어서 보냈다. 여기저기 알려서 싸움을 키우자는 의도가 아닌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
얼마 후 멋쩍은 얼굴로 B팀장이 찾아왔다. "왜 자꾸 메일로 사람 괴롭혀...?"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결 낫다. 나도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저희 일을 B팀으로 넘겼다면 잘못이지만, 메일에 썼듯이 올해부턴 항목이 나뉘어서 그런 거니 오해하지 마세요. 윗분들 모시고 회의실에서 서로 얼굴 붉히지 맙시다."
B팀장은 어느새 가만히 듣고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꽃수레 권법'의 피니시 기술을 날린다.
"팀장님. 팀원들도 보고 있는데, 애들 앞에서 싸우지 맙시다. 부탁드립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그가 허허 웃는다. "알았어. 알았어. 안 그래도 아까 우리 팀원들에게 그 자료 정리하라고 시키려고 했어."
아이들 싸움이 어른싸움이 되듯 직장 내 갈등도 그러기 쉽자. 감정이 실리고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서로를 깎아내리고 망신주기 일쑤다.
하지만 남을 망신 주고 얻은 승리는 승리가 아니다.
이슬아 작가님처럼, 싫은 소리를 꽃수레에 담아 건네는 방식. 이 얼마나 아름답고 다정한 주먹질인가.
'우리, 애들 앞에서 싸우지 맙시다.'
어른의 싸움은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달리며 '꽃수레 권법'을 연마한다.
꽃수레 권법이 있는 한 현피를 떠도 꿀릴 게 없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