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냉장고를 샀어.
방에 두고 바라만 봐도 배가 불러.
맥주를 샀어. 술도 안 마시는데 왜?
오리온 맥주. 고3딸과 다녀온 오키나와가
생각날 땐 이상하게 그 맥주가 떠올라.
언제였더라. 올해 4월. 제주도였어.
혼자 호텔방에서 오리온 한 캔을 깠던 날.
요조 님께 오디오북 낭독 승낙메일 받은 날.
그날은 조금 취하고 싶더라.
언젠가 자신을 잉여인간이라 쓴 글을 보았어.
아프고 슬프더라. 차가운 내 심장도 울릴 정도로.
참 나쁜 단어. 잉여. 다 쓰고 남은 인간? 아니면
쓸모가 없는 인간? 누군가를 잉여라고 부를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걸까.
그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글 쓴 그분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스스로 잉여라는 생각을 믿게 되면 살 수가 없지.
코로나 때 달리기 시작했어. 세상이 너는 잉여라고 외칠 때 달리고 쓰면서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했어. 살기 위해. 5년 간 풀코스를 넘어 100km 울트라마라톤을 뛰고 책 내고 쉼 없이 달려온 나란 인간에게 작은 파티를 열어주고 싶었어.
오리온 한 캔. 맥주 500ml 하나로 충분했어.
오키나와가 보이고, 요조 님 노래가 들렸어.
엄마랑 함께 고쳐 쓰던 퇴고의 밤이 스치고
울고 웃으며 달려온 나의 달리기가 보이더라.
그간 외로웠던 시간을 가득 채운 간절함도.
어쩌면 난 여전히 잉여인간일지 몰라.
아직도 남들에게 글과 삶으로 전할 잉여가 가득한
그런 양파 같은 인간. 그래. 맞아. 그게 나야.
언제나 가슴에 가득한 이야기로, 너의 빈자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난 그런... 잉여인간이야.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어. 너처럼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