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아직 너 책 낼 때 안된 것 같다.

by 러너인

"일을 못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시 해보는 것 하나뿐이다. -이슬아-"

첫 책을 내고 나니, 유명작가님들의 편집자와의 티키타가가 부럽다. 작가의 글을 실시간으로 조언해 주는 편집자가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첫 책을 내는 작가는 투고로 출간계약을 맺는 자체가 성공이니까.


나는 최고의 편집자를 알아보고 함께 작업하는 작가의 안목과 그런 '편집자'와 소통하면서 책을 수정해서 쓸 수 있는 그 스토리 자체가 부럽다.


3월에 출간한 첫 책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떠올린다. 난 어떤 편집자와 일했지? 난 교정교열 외에 유명작가님들처럼 글 내용을 봐주는 편집자는 없었다. 내 글이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불안했다.


회사일로 바빴다. 출판사와 연락하니 충분히 시간을 드릴 테니 퇴고까지 끝낸 원고를 달라신다. 내게 주어진 건 출간계약서와 시간뿐. 누군가는 편집자만 잘 따라가면 책이 뚝딱 나온다지만, 그런 건 선택받은(?) 작가에게 주어지는 드문 기회다.


초고는 자기 눈엔 다 이뻐 보인다. 아기 고슴도치 부모처럼. 그 망상을 깨줄 제3자가 편집자인데, 그런 역할을 오로지 혼자서 해내야 한다,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냉정한 편집자가 절실하다. 한 분 계시다. 엄마. 올해 87세 되신 우리 엄마. 오래전 수필가로 등단하시고 미술에 조예가 깊으신 분. 출간작가는 아니지만 계속 공부하고 글을 쓰시는 우리 엄마.


문제가 있다. 오죽하면 가족끼린 운전도 배우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가족만큼 혹독한 편집자가 될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대한민국 최고의 편집자라도, 작가 엄마만큼 애정을 갖긴 힘들다. 문제는 가까운 만큼 더 아플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원래 갓 나온 책을 들고 엄마에게 드리며 서프라이즈로 나타닐 계획이었지만, 눈을 질끈 감고 톡을 보냈다.

"엄마. 제가 지난 4년간 달리면서 느낀 것들, 경험, 사람들에 대해 달리기 에세이를 기획해서 투고를 했어요. 다행히 어느 출판사와 계약을 마치고 지금 초고를 완성했어요. 누군가 제 글을 먼저 봐줬으면 좋겠는데 엄마에게 보냅니다. 시간 되실 때 검토 부탁드려요."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내 손끝에는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뭐 손댈 게 있을까? 하는 알량한 마음까지. 초보작가의 글부심이랄까. 어떤 칭찬이 기다릴까... 1시간 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엄마? 어떠셨어요?"

"얘. 너 아직 책 낼 때 안된 것 같다."

"..."

너무 충격받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꾹 참고 다시 여쭸다.

"왜요? 그렇게 이상해요?"

"진짜 네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 생동감이 넘치지만 감정이 과하다. 예술가는 옷을 벗되 벗을 줄 아는 사람이다. 옷을 어떻게 벗느냐가 예술이냐 외설이냐 기준이듯 지금 네가 보낸 초고는 감정을 그냥 드러낸 글이다. 네 나이 50이고 첫 책인데, 20대처럼 치기 어린 표현은 맞지 않다. 누군가는 자신을 까발리듯 노출해서 대중적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우리는 연예인이 아니다. 여과 없이 쓰는 글이 좋은 글이 아니다."


"엄만 감각이 올드하세요. 달리기 에세이는 생동감이 생명이에요."

"너 지금 내 말 이해 못 했다. 전화 끊어라. 한참 후에 몇 시간 지나서 네 글을 다시 차분히 살펴라. 내 말 뜻을 다시 생각해라."


전화를 끊고 화가 났다. 출판사에선 괜찮다고 했는데. 얼마나 힘들게 투고해서 된 계약이고 첫걸음인데 첫마디가 "얘, 너 책 낼 때 안된 것 같다."라니 속상하고 아팠다. 시간이 지나 내 초고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울었다. 아팠다.. 같은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였구나.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아니다. 다시 읽어보니 네 글이 좋았다. 한 인간이 달리기를 만나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아무 운동도 안 하던 한 중년이 달리며 어떻게 세상과 연결되었는지 놀라웠다."


퇴고를 시작했다. 6개월간 엄마랑 자주 싸우고 다시 글로 화해했다. 어느 새벽 엄마에게 톡이 왔다. " 지금 내 나이가 87이다. 눈도 아프고 힘들어도 유서를 쓰는 마음으로 네 책을 퇴고하고 있다. 너도 끝까지 힘내라. 살아서 이 나이에도 도움줄 수 있어 기쁘다."


그날 많이 울었다. 엄마 몰래 아이처럼.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나온 책이다.

"엄마. 이제 저 책 낼 때 된 거 맞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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